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쁘고 아름다운 선물은 무엇일까?
1980년대 초반 고등학교시절 먼 거리를 통학하던 그 시절, 어느 가을날 버스표(회수권)를 내지 않고 공짜로 타기로 친구들과 장난질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버스에서 내릴 때 회수권을 내고 안내양이 이를 회수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꽉 찰 때면 한꺼번에 내릴 때 회수하는 것이 반거로워 미리 받고 내릴 때는 자유롭게 내리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양이 버스 안을 다니면서 어디서 내리느냐고 묻고 회수권에 새겨진 금액을 함께 얼굴을 봅니다.
안내양의 기억력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종종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불량 학생들(?)이 여러 개의 회수권을 미리 걷어서 한꺼번에 건네주는 것이지요.
대신 한 두명은 앉아서 머리를 숙이면 숫자를 안내양이 잘 볼 수 없어 회수권 한 두 장을 덜 회수하게 됩니다.
종종 속아주기도 하지만, 기억력을 의지해서 내리는 숫자를 셉니다.
그래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합니다.
"덜냈다."
"아니다. 다 냈다."
약삭빠른 녀석들은 회수권을 접어서 두 장인 것처럼 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긴 돈으로 같이 떡볶이와 핫도그를 사 먹었다고 자랑질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쩌다 나도 그들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안내양이 속아 준 듯합니다.
그런데 내 얼굴이 거짓말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속아 준거야. 알지"라는 눈치였습니다.
늘 같은 버스를 타야 하는데, 다음 날부터는 안내양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정직하게 사연이 담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고 회수권도 넣어서 버스에서 내릴 때 몰래 주고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부터 얼마나 자유를 얻었던지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행복은 몇 십배가 되어 되돌아왔습니다.
사실 안내양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누나이거나 중학교를 마치고 2~3년 뒤 취업했었습니다.
어쨌거나 한 두 살 누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예쁜 편지봉투를 건네주면서 환하게 웃어 주는 안내양을 보며 놀랐습니다.
사귀어 보자는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써 있었습니다.
자기가 월급을 받아서 고마움에 선물로 준다며 회수권을 10장씩 세 묶음을 함께 주었습니다.
그 때 시골에서 운행하던 버스는 종점에서 거의 종점까지 삼십리였기 때문에 그 당시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주어야할 것을 준 것뿐인데,
안내양은 종종 속기도 하고 속아 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님이 손님 전체 숫자를 세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이 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애로사항이 있다는 것을 안 뒤부터는 버스를 타면 안내 방송을 일부러 합니다.
"하여간 회수권 안 내고 타다 들키면
영원히 버스 못 타고 다니는 줄 알아라!"
"이 눈이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으닝께.
알아서들 혀라!"
그러면 안내양은 웃음을 짓습니다.
서로 바라보며 윙크인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용서받는 기쁨은 이렇게 크다는 것을!
그리고 용서는 용서로 끝나지 않는 행복이 뒤따라 온다는 것을.
그 시절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내)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당신은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제 당신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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