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의 "밤에 예수를 찾아간 니고데모" 이야기.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그런데"로 시작하는데 의미심장함을 느낀다.
δὲ (접속사, 그러나, 그런데)
앞 문장이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궁금했다. 표적이 어디서 왔을까.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그도 인정한다. 율법에 관한 대화에는 니고데모는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δὲ Ἦν ἄνθρωπος ἐκ τῶν Φαρισαίων,
ἄρχων τῶν Ἰουδαίων· Νικόδημος ὄνομα αὐτῷ,
요한은 2장에서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이야기에 관해 이렇게 마친다.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즉, "예수께서 자기를 아무에게도 의탁지 않으셨다.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룩한 고민(의문)이 생겼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니고데모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찾아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이라고 인정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러한 표적들을 행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3:2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문서답 같은 말씀을 툭 던진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중생, 신생)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동문서답이 아니다.
예수님은 결론부터 말씀하신 것이다.
"니고데모야! 네가 날 찾아온 것은 이 것 때문이지.
네가 알고 싶은 것이 이 질문이지"라는 말씀이 없이 곧바로 핵심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의 생각, 그가 찾아온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도 성경을 읽은 독자인 우리들에게는 마치 예수님은 동문서답 같은 말씀을 하시는가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이미 답은 2장 후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의 대답이 동문서답이다.
거듭나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이야를 들은 그는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아니했다.
과연 니고데모가 그 의미를 정말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왜 니고데모는 못 알아 들었을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4)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5)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5)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6)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니고데모는 유대교(바리새인의 지도자 *산헤드린 공회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은 신약 성경에서 거듭남(regeneration), 세례(baptism), 성령(Spirit), 생수(living water)라는 상징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아래에서 성경 본문과 함께 예수님의 가르침, 바울의 신학,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드리겠습니다.
🔹 1. 요한복음 3장: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 의미:
- ‘물’과 ‘성령’은 두 가지 요소가 아니라, 한 가지 신적인 재생의 한 사건을 묘사합니다. 헬라어 문맥상도 “물과 성령으로부터”는 하나의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 여기서 ‘물’은 단순히 물리적인 세례를 가리키기보다는 정결하게 씻는 상징, 곧 성령의 정결케 하시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 (cf. 에스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 2. 요한복음 7장: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7-39)
📌 의미:
- 예수님은 **성령을 ‘생수’**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생수는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는 은혜의 흐름입니다.
- 성령은 거듭남을 일으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 3. 마태복음 28장: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 의미:
- 이 세례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닌, 삼위 하나님의 이름 안에 들어가는 연합의 시작입니다.
- 성령의 세례는 외적 물의 세례와 함께 내적 거듭남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즉, 세례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부여를 상징합니다.
🔹 4. 디도서 3장: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우리를 구원하시되… 그의 긍휼 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 의미:
- 바울은 **중생(παλιγγενεσία, palingenesia)**을 “씻음”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전적인 재창조입니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인간 안에서 내면의 변화, 즉 죄의 용서와 새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https://youtu.be/5 SVkvlhYSlA? si=ccp2 Nc_qR3 AP-Nbj
-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생명의 역사이며, 이는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통해 주어집니다.
- 개혁주의에서는 세례를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으로 보며, 중생의 외적 증표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세례 자체가 거듭남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중생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이며, 세례는 그 외적 표식일 뿐입니다.
https://youtu.be/5 SVkvlhYSlA? si=ccp2 Nc_qR3 AP-Nb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