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의 신앙 여정은 이성의 신앙에서 부활신앙의 확신과 완전한 고백에로 나아가는 깊은 믿음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그의 여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졌는가?
= 기독 청소년들 30%, 햔국교회 신자들 60%
1. 의지와 결의의 신앙에서 체험의 신앙에로 (요한복음 11:16)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도마가 보인 말과 행동은 의지인가? 결기(결氣)인가? '결'은 순수 우리말이다. 결기는 세가지 뜻이 있다. (부정적으로)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긍정적으로)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
한자로 쓰면 결기(決起)는 결연히 일어남을 의미한다.
도마는 예수께서 위험한 유대로 다시 가려 하실 때, 주저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 결의를 보여주는 결단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도마가 단순히 《의심 많은 사람》이라고만 단정짓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일 뿐이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진지한 헌신을 가졌었던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이 같이 고백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마가 요한복음 11장 16절에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한 이유에 대해 여러 주석과 해석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
이 발언은 도마의 성격과 당시 상황을 반영하며, 그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된다.
1. 위험에 대한 현실적 인식과 충성심의 표현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유대로 가시겠다고 하셨을 때, 유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요한복음 10장 31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도마는 예수님을 따라가면 자신들도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적 두려움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주님이 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 때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제자로서의 결의와 충성된 마음, 동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2. 비관적 체념이 아닌 헌신의 결단
도마의 발언을 단순한 비관적 체념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죽음도 마주할 각오를 다짐하며, 예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동행의 의지를 나타내며,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제자로서의 헌신을 드러냅니다.
3. 도마의 성격과 신앙 여정의 반영
도마는 요한복음에서 네 번 등장하며, 그의 성격과 신앙 여정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이나 질문은 매우 실증주의적이며 매우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확신을 갖고자 질문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였고, 이성으로 믿기지 않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이러한 모습은 도마가 단순히 의심 많은 제자하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결론적으로 도마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발언은 당시 상황의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는 그의 개인적인 결의를 보여 준 것이다.
이는 도마가 단순히 의심 많은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음도 마주할 각오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에 그러한 믿음과 결의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즉, 우리의 결심이나 노력으로 주님을 따를 수 없다. 반드시 넘어지고 실패할 뿐이다. 주님이 붙들어 주셔야만 한다. 주님과 연합, 하나됨, 내 안에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하셨다. 눈으로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신앙에 이르지 못했다.
2. 질문하는 신앙에서 확신하는 신앙에로 (요한복음 14:5)
어찌보면 도마의 질문은 상황에 맞는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그는 궁금했다. 주님을 정말 따르고 싶은데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서 우리가 거처할 곳을 준비하러 가신다고 말씀을 하시자 도마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묻는다. 도마의 믿음이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자신이 확신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씀하신 의미가 이해되지 않아서 물은 것이다. 대충 어물쩍 넘어가고, 아는척하고 넘기는 것보다 차라리 정직하게 "모릅니다. 알려 주십시오"라고 묻는 것이 더 진실한 태도이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께로 가는 그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천명해 주셨다.
3. 이성적 믿음에서 완전한 고백의 신앙에로 (요한복음 20:25)
이성적으로 누가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십자가에 어떻게 못박혀 죽었는지?, 마지막 군인이 어떻게 했는지?를 안다면 말이다.
그래서 도마는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 도마는 제자들의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후"에라야 믿겠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미 세번씩이나 부활을 말씀하셨어도 부활은 불가항력적이고 초자연적 사건 곧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 앞에 게신 예수님을 보면서 그에게 직접 들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4. 완전한 고백의 신앙 (요한복음 20:28)
그런데 그렇게 완강하던 도마가 "그의 이성 안에 인식의 변환"을 가져온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을 때였다. 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첫번째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지 8일 후에 도마에게 나타나셨다. 10명의 제자들이 부활을 전해 준 후 8일 후에 일이다. 요한은 8이라는 숫자가 "새로 태어남"을 상징을 잘 알고 있었다.
도마는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자신을 나타나시자 자신의 생각과 이성의 한계 안에 갖혀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드디어 도마가 새로 태어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를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는 즉시로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무릎 꿇고 부활하신 예수를 향해 가장 <완전한 고백적인 신앙>이 담긴 말을 남겼다. 이는 요한복음 전체를 통틀어 예수를 향한 가장 높은 신앙 고백이며, 도마의 여정이 의심에서 가장 확신 있는 믿음으로 옮겨졌음을 상징합니다.
결론
도마가 ‘의심하는 제자’라는 선입견을 갖지 말자. 우리도 부활의 신앙에 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도마와 같은 모습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님과 함께 죽음의 자리에도 가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모습에서, 또 예수님께서 전해 주는 말씀이 이해 되지 않았을 때 이해와 확신을 갖고자 노력했고, 또 부활의 주님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뵈었을 때 더이상 거부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 자신 속에 있는 믿음을 그대로 보여준 정직한 제자’이다.
나도 도마처럼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가고 싶고, 모르는 것은 정직하게 알려달라고 질문하고, 주님을 만났을 때 뜨거운 마음을 무릎을 꿇고 나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신자, 제자,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고백했던, 결심했던, 다짐했던, 서원했던 것을 지키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정직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알고 싶다고 묻고 있습니까?
지금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이제 당신이 고백할 차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 부활 신앙에로의 여정(2), 제자 도마이야기 』(요한복음20:19~31)
부활의 아침, 성도들과 함께 서로 나누고 싶은 인사가 있습니다. 이런 인사로 예배를 시작합시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디두모라 하는 도마에 대해 4번 등장하는 것으로 비중(比重)있게 다루고 있다. 도마의 신앙의 여정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신앙고백을 점검하면서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은혜를 받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Χριστός ανέστη. Αληθώς ανέστη!)
1.결단의 신앙에서 체험의 신앙에로(요11:16)
10장 31절에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일어나 유대로 가자!”하실 때에 제자들 그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도마는 예수님을 따라가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선뜻 나서서 대답을 했다. 그의 대답에 예수님은 책망하거나 칭찬도 없었다. 우리의 결단과 결심, 결의는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 주님을 따르고 함께 하겠다는 신앙적 결의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연합이 없이는 그 결단도 이룰 수가 없다. 다음 단계의 신앙은 무엇인가?
2.질문하는 신앙에서 확신하는 신앙에로(요14:5)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우리가 거처할 곳을 준비하러 가신다고 말씀을 하시며 너희도 그 길을 알리라”고 말씀하시자 도마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묻는다. 어찌 보면 도마의 질문은 상황에 맞는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그는 정말로 궁금했다. 주님을 정말 따르고 싶은데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도마의 믿음이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자신이 확신할 수 있을 때 믿음도 견고해 진다. 대충 어물쩍 넘어가고, 아는 척하고 넘기는 것보다 차라리 정직하게 "모릅니다. 알려 주십시오"라고 묻는 것이 더 진실한, 정직한 신앙을 갖게 만든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께로 가는 그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천명해 주셨다.
3. 확인을 요구한 신앙에서 완전한 고백의 신앙에로(요 20:25)
누가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십자가에 어떻게 못 박혀 죽었는지, 그리고 마지막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어떻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말이다. 그래서 도마는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후"에라야 믿겠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미 세번씩이나 부활을 말씀하셨어도 부활은 불가항력적이고 초자연적 사건 곧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그에게 직접 듣고 나서야 그의 생각이 꺾이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은 이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과 그는 우리들에게 예수가 누구라고 고백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29~31)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2)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말씀나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1:2)
1.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책망이나 칭찬이 없었던 이유를 말해보자.
2.도마는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고 생각하는가?
■ 오늘 새롭게 깨달은 말씀 혹은 신앙의 결단, 기도제목을 작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