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목표(목사의 사명)
- 회중인 성도들의 영혼의 변화(회심, 하나님께로 돌이킴)
- 건강한 교회/그리스도와의 연합(풍성한 삶, 양으로 생명을 얻음)
예수님이 사랑하시더니
참사랑이란? 사랑하셨는데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머무심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고난(가난, 질병, 문제 해결)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척도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얼마나 기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
1.마르다와 대화,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의심)
- 진리의 말씀으로 응답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불쌍히 여기시다. 비통히 여기심, 괴로와 하시는 장면 눈물 흘리시고,
감정이입이 아니라 - 의심, 불신에 대한 분노 - 회개치 않는 예루살렘을 보시며
2.마리아와의 대화
- 비통히 여기심(2번) 죽을 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일,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날 일
-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의문을 갖는, 불신 등
- 예수님이 보이신 정서이다.
하나님을 대적, 불신을 보면서 우리의 정서는 어떠한 것으로 드러날까?
자녀들 불신앙 등....
3. 무리들과의 대화 -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는데 왜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는가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부활을 통해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불러 일으키심
표적을 통해 주시려는 믿음
-. 심부름꾼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 마르다, 마리아 -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 25, 32 원망조로 아쉬움과 탄식, 절망, 죽음 앞에서의 체념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영광을 드러내심 - 죽음, 슬픔, 절망을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신다.
-. 예수님이 마르다, 마리아, 심부름꾼, 무리들을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초대하시고 계신다.
요한 사도는 죽은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그의 누이들 마르다와 마리아가 겪었을 큰 충격과
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분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늦게 가셨을까?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아들의 영광"을 보여주어
우리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부활과 생명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1.우리(나)의 실존과 도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급작스런 죽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나의 죽음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먼 미래의 사건이라고 여긴다.
갑작스럽게 병들어 죽은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나사로( Λάζαρος 라자로스) 이름의 히브리식은 엘리에셀/에제르(אֱלִיעֶזֶר, 도우시는 하나님/ 창15:2)이다.
어원은 אֵל(el; 하나님) + עָזַר(ʽâzar; 도왔다)
죽음은 인간의 실존이고,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 나사로는 아담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인간 실존의 표상(表象)이다.
죽음은 결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실존이다.
첫째,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피할 수 없다
둘째,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끝, 종착역으로 그것을 숙명(운명)처럼 여기는 존재
셋째, 생명이신 하나님의 도움(엘리에젤, 나사로 -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
2.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소중히 여김>과 <희생>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는 당장 내 눈 앞에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해결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나의 존재(세계관)를 바꾸어 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
"예수 부활, 내 부활로" "예수 생명, 내 생명으로"
구약성경은 부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음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라는 용어가 칠십인경(LXX)에
시편 65편 1절, 예레미야애가 3장 63절, 다니엘 11장 20절, 스바냐 3장 8절, 마카비2서 7장 14절, 12장 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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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영원한 사랑이다(요13:1).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예수님을 앎으로 얻게 되는 영원한 기쁨이고, 영원한 행복이다.
예수가 누구인지 정말로 아는가?
그의 사랑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과 그의 영광에로 이끄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도 함께 누리라고 초청하신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친구(friend)라고 불렀다.
죄로 죽었던 <나>를 친구로 불러 주신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기쁨인가!
3. 《부활과 생명》의 권능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당장 죽을병도 능히 고치실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권능 사용하지 않고 보류하셨을까?
“예수께서 아버지의 영광과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즈음 나사로는 이미 죽어 당일에 장례가 치러졌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요11:17).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그녀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고 했을 때, 그녀들이 가진 믿음은 우리의 신앙수준이다.
그녀들은 예수님이 원망스럽고, 속상하고. 베다니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그들을 보실 때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예수님의 눈물(하팍스, 커다란 재난 앞에서 느끼는 슬픔, 고통)은 패배와 절망이 아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인류를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죄>에 대한 끓어오르는 거룩한 분노였다.
이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느끼시는 슬픔의 감정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분노는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킴으로 증명하셨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엄마가 잠자는 아기를 깨우듯 불러내신다.
아담을 흙으로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넣으시고 생령(살아있는 존재)로 일으키시듯.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아오라!”고
■ 말씀나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1:2)
1.우리의 실존인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생각과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은 무엇인가?
2.예수님이 나를 그의 친구라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 무엇이 있습니까?
■ 오늘 새롭게 깨달은 말씀 혹은 신앙의 결단, 기도제목을 작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