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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과 맹인 이야기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맹인이 되어 보기로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해본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라는 말은 예루살렘 성 안이었을까? 밖이었을까?
아니면 예루살렘 성을 나서자 마자 큰 길에서 였을까?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성경은 단지 예수께서 《길가실 때에》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셨다고 보도하고 있다.
구걸하기 좋은 큰 길이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눈에 잘 띄는 곳,
그곳이 그의 직장이고 삶의 중요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알 수 없는 그 누군가 주고 가는 동전 몇 개에 에 몇 번이고 머리 숙여 감사하고 그것이 삶의 기쁨이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으려나.
저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와 오고 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래도 누군가 구걸하는 나를 보고 도움을 줄 거리고 생각했다.
제자들과 길을 가시던 예수님과 열 두제자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걷은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 온다.
나에게는 구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저들은 얼마나 나를 불쌍히 여기며 동정해 줄까?
가던 길을 멈춘 그들은 이같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저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은 곧 나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비수가 되어 깊이 박힌다.
나와 상관없이 저들은 벌써 나를 죄인 취급하고 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맹인으로 태어나 평생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짐이 되었고, 수도 없이 듣던 말이지만,
오늘은 내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죄를 짓는 것 봤냐고."
내가 태어나서 보니 소경인 것도 억울 한데...
이런 나쁜 사람들, 당신들은 눈을 뜨고 살지만,
나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살지 않느냐
"
고 따지고도 싶었다.
그들이 불행한 나를 더 욕되게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더 비참하게 하는 말을 했을 때 맹인이던 나에게 비수처럼 꽂히고 상처를 준다.
아니 이런 일에 너무나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냥 떠들라지 뭐!
지들이 내 맘을 알기나 하나."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해도 좋으니.
구걸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많이 주기나 해라."

동전이나 많이 주고 가라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 불행을 누가 알아 줄까?
한마디 말이 위로를 줄텐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상처는 주지 말아야지.

속으로는
"대충 이 정도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주려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동전조차도 주지 않는다.
실망이다.  
사랑의 예수님조차도 동냥으로 엽전이라도 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묵직한 목소리로,
랍비같은 분의 음성이 들려 왔을 때 내 마음은 눈 녹듯이 응어리가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분명 이 분은 다르다.
왜 나에게 너의 죄나 너희 부모의 죄라고 말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이같이 말씀해 주시는 분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하시더니 내 눈에 진흙을 바르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나는 이제 그분이 명령하신 말씀대로 실로암 못으로 가야만 한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넘어지고, 여기 저기 상처 투성이로 살아왔다.
그래 내 인생에 이같이 말씀해 주신 분은 없다.
나는 가야 한다.
실로암 못으로.

비록 맹인이지만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전설같은 이야기를,
그 실로암 못은 700년전 정확히 B.C 701년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제국의 산헤립이 침공을 대비하여 만든샘이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 생존하는 유일한 물을 얻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이런 폭언을 남겼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아!
만일 너희가 나를 거역하면,
너희가 너희 똥을 먹으며, 너희 오줌을 먹게 하리라."

그래서 히스기야의 대공사는 지상에서 물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암반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 지하터널은 자그마치 530m가 넘는다.
살기 위해, 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목숨 걸고 해냈다.
그렇게 성 안으로 흘러 들어 온 기혼샘 물이 연못을 이루어 《실로암》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그곳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걷는 동안
나는 주님은 왜 나를 거기로 보내셨는지 희미하게나마 알 것만 같았다.
나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영적 터널>을 뚫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영생을 주시는 생수를 얻기 위해서.

나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주님이 나를 실로암으로 보낸 이유를,
그 비밀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주님은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혀 살던 나에게,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깨고,
히스기야에게 사회적 통념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대공사,
지하에 암반을 뚫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사명이었듯,
나도 지금 영적 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음성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오늘도 내 앞 길에 장애물이 많이 있다.
그것들을 뛰어 넘어야먼 갈 수 있는 실로암,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영적인 새출발이 시작될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나의 실로암을 찾아 가고 있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오늘 영적 소경이던 내 눈도 활짝 뜨여지길 간절히 원한다.
주님! 주님은 나의 <실로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