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우리는 제물과 헌제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물의 특징, 흠 없는 제물로 여호와께 드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레 1:2).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누구든지 합당한 예물로서 제물을 준비합니다.
희생제물로 드려지는 동물로는 <흠과 점이도 없는 일 년 된 어린 양>이어야 합니다.
구약학자 롤랑 드보(Roland de Vaux)는 제물은 무엇인지,
그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와 어떠한 유대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제물에 흠이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일 년 된 어린 제물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과 작고도 귀여운 몸짓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온통 그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태어나던 날부터 내 마음에 담겨진 그 어린 양은 나의 사랑을 먹고 자란 생명이요, 모든 관심과 기대를 품고 자란 나의 분신이며, 나의 하루를 온통 즐겁게 하는 축복입니다. 나의 제물은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가슴으로 키우던 것이어야 합니다. 준비도 없이 지내다가, 성전 밖에서 돈으로 산 것을 제물이라 여기며 성전 뜰로 끌고 가기에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진정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던 양이 나를 대신하여 제단 위에서 불 타는 제물이 될 때, 그 제물은 나를 바로 세우는 깃발이 됩니다.(롤랑 드보, 구약시대의 종교풍속, 이양구 역 (도서출판 나단, 1993, 72-90, 136-155))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
제물을 성소로 데리고 갈 때, 뒷발을 뻗치며 머뭇거리거나 발버둥 치는 양은 끌어안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매우 아파집니다. 성소 뜰에 들어온 제물에게 곧 손을 얹고 안수하게 됩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레 4:4).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물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안수한다는 것에는 장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물로 바치는 짐승은 지금 이 자리에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며, 제사장은 이 짐승을 제단에 바칠 때 “그의 이름으로” 바칠 것이고, 이 제물이 드려지므로 발생하는 효과는 모두 “다시 그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안수의 초점은 제물에 있지 않고, 제물 바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제 어린 양이 나를 위한 제물이 됩니다. 눈을 마주쳐가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던 나와 양이, 이제는 죽이는 자와 제물이 되어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안수하는 잠시의 시간 속에 흐느낌이 있고, 떨림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 제물을 잡는 곳으로 제물을 끌어다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합니다. 제물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양심이나 영혼이 없기 때문에 자기 죄가 없습니다. 단지 사랑하던 주인의 죄 때문에 죽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한없는 희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 제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죄인에게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겔 18:30)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