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율법과 성전, 유대교의 전통적 해석과 올바른 해석

유대교를 떠받치는 두개의 기둥 

하나는 율법이고, 또 하나는 성전이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왜곡하여 자기들의 입맛대로 바꾸었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에서 유대교 율법대표인 니고데모와 예루살렘 (성전)예배

 - 요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 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성경은 랍비들의 해석을 성경으로 여긴다. 

미드라시(단수 히브리어: מִדְרָשׁ 미드라쉬, 복수 히브리어: מִדְרָשִׁים 미드라쉼, 영어: Midrash)

 -  '찾다, 조사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드라쉬'에서 유래한 말

 - 미드라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의 이야기

  - 탈무드는 미시나(Mischna, 반복/가르침)와 게마라(Gemara, 보완/보충)가 합쳐진 책

    탈무드(히브리어: תלמוד, 영어: Talmud)는 유대교의 주류 종파인 랍비 유대교의 중요한 경전

    '탈무드'라는 히브리어의 원뜻은 '배움', '학습'

     - 유대전통에서 탈무드는 구전토라라 불렸다.

    - 즉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시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율법에 대한 '말로 된 설명'이라는 뜻

     게마트리아(גימטריה, gematria)는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수비학, 히브리 문자를 숫자로 변환하여 문장에 숨겨진 의미

를 찾거나 암호화하는 방법(다윗= D(4)+V(6)+D(4) =14/  '다윗'(דוד)은 14가 된다

    -  153”은 히브리어 “베니 하엘로힘” 즉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이란 표현을 게마트리아로 합산이다.

    - ‘1장과 21장이 교차대구고조(키아즘구조)로 상응한다

    - 요한복음에서 ‘진리’(ἀλήθεια)와 ‘진실로 진실로’(Ἀμήν ἀμήν) 어휘는 25회(5[모세]×5[모세]=새 모세) 사용된 중요단어  

    - 교차대구구조에 따라 1장과 21장의 첫 절(1:1과 21:1)이 공히 헬라어 단어 17개로 이루어졌다
    - 요한은 ‘대략’을 말하는 숫자, 가령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2:6), 오천 명쯤(6:10), 십 여리쯤(6:19),

       백 리트라쯤(19:39), 한 오십 칸쯤(21:8)에서 사용된 숫자와 달리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할 경우,

       가령 돌항아리 여섯(2:6), 여섯 남편(4:18), 가룟 유다(6회), 일곱 시(4:52), 38년 된 병자(5:5), 여드레(20:26) 등

       모두 게마트리아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큰 물고기 153표적’(21:11)이 그러하다.

       = 17×3×3=153 (1장 전체가 51절(17×3)/  21장 1절이 17개의 헬라어 단어로 구성
            17은 이미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나이(창 37:2)

            모세의 나이 120세([3×4]×10),

            다윗의 나이 70([3+4]×10) = 17

            아브라함 = 숫자(7+5+5), 이삭 = 숫자(5+6+6), 야곱 = 숫자(3+7+7)은 모두 17

        부활하신 주님은 여덟 번째 표적으로 ‘큰 물고기 153표적’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상징 코드’(숫자, 표적, 말씀, 구조, 지리, 절기, 인물)도 ‘일곱’(7)이라는 숫자 기본적으로 전제

         318명(창 14:14)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라”라는 뜻의 ‘엘리에젤’(אליעזר)을 상징 숫자(318=1+30+10+70+7+200)

        요한이 얼마나 숫자(횟수) 7

        일곱 시(4:52), 빛(1:4-9), 선생(랍비)(1:38; 3:2, 10; 11:28; 13:13, 14; 20:16),

        구원(구주)(3:17; 4:22, 42; 5:34; 10:9; 12:27, 47), 물(4:10-15), 일곱 표적(2-11장),

         일곱 신앙고백(1:49; 4:42; 6:14; 6:68-69; 9:38; 11:27; 20:28),

         마지막 날(6:39, 40, 44, 54; 7:37; 11:24; 12:48),

         신성언어 ‘에고 에이미’의 비유적 용법(6:35; 8:12; 10:7; 10:11; 11:25; 14:6; 15:5),

         증인 본문(1:19-51)의 기독론

         -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 이스라엘의 임금, 인자),

           문(10:1, 2, 7, 9; 18:16; 20:19, 26),

           도마(11:26; 14:5; 20:24, 26, 27, 28; 21:2),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12:38; 13:18; 15:25; 17:12; 19:24, 28, 36),

           빌라도 일곱 단락(18:28-32, 33-38a; 38b-40; 19:1-3, 4-8, 9-12; 13-16),

           밤(3:2; 7:50; 9:4; 11:10; 13:30; 19:39; 21:3),

           일곱 부류의 여인들(예수의 모친 마리아[2:1-11]

            - 우물의 여인[4:4-44]; 마르다와 마리아[11:1-45; 12:1-12]; 해산하는 여인[16:20-21];

              대제사장의 뜰에 있었던 여인[18:15-17]; 십자가 곁에 있었던 여인들[19:25-26]; 막달라 마리아[20:1-18]) 등.

‘일곱 표적’  요한은 공관복음이 사용하는 ‘이적’(δύναμις) 어휘(마 12회, 막 10회, 눅 15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표적’(σημείον) 어휘만을 17회(십자가 숫자) 사용 
요한복음의 ‘표적’(세메이온)은 메시아적 능력(miracle)을 나타내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 배후의 그 무엇을 나타내는 암시(sign), 즉 묵시문학적 암호상징(상징코드)이다. 

 => 손가락 자체가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무엇을 말한다.

첫 표적: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2:1-11), 

두 번째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6-54), 

세 번째 표적: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5:1-9), 

네 번째 표적: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6:1-15), 

다섯 번째 표적: 물 위를 걸으심(6:16-21), 

여섯 번째 표적: 태생 소경을 치유하심(9:1-41), 

일곱 번째 표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11:1-44).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일곱 표적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절기(가령, 유월절), 지명(가령, 요단강 건너편), 인명(가령,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 등 수많은 단어들이 그 어떤 것을 암시(sign)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은 ‘표적(sign)의 책’(1:50; 12:37; 20:30-31; 21:25 참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호용 교수】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표적과 일곱 비유 // 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표층적으로 보면 일곱 표적은 두 개씩 짝을 이루어 처음 두 표적은 <‘가나’>라는 장소와 연관되어 있고, 

  - 포도주 기적(2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장)

그 다음 두 표적은 <‘유월절’> 절기와 연관되어 있고, 

  - 오병이어(6장), 바다 위를 걸으심(6장)

마지막 두 표적은 <‘안식일’> 과 연관되어 병자를 치료하신 표적이다. 

  - 38년된 병자를 고치심(5장), 

그런데 심층적으로 보면 배열순서는 구약의 7일간의 창조구조와 상응한다. 이 같은 사실은 요한복음이 ‘부활신학’, ‘구약적(히브리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일곱 날의 창조순서(창 1:1-2:3)는 제7일인 안식일을 중심으로 여섯 날이 그 주변을 형성하며, 첫째날-넷째날, 둘째날-다섯째날, 셋째날-여섯째날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다윗의 별)로 되어 있다. 첫째날은 빛 창조, 대응하는 넷째날은 빛의 발광체 창조, 둘째날은 물과 궁창의 분리, 대응하는 다섯째날은 물에는 물고기, 궁창에는 새를 창조, 셋째날은 땅과 식물 창조, 대응하는 여섯째날은 땅에는 인간창조, 식물에는 동물창조, 그리고 일곱째날은 창조 사역을 마치고 안식하셨는데, 이날이 다른 여섯 날과 구별되는 것은 이날에만 ‘거룩하게’(창 2:3)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 ‘거룩’ 개념은 ‘구별’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표적도 7일간의 창조구조와 똑같이 일곱 번째 표적인 나사로 소생 표적을 중심으로 여섯 표적이 그 주변을 형성한다. 첫째 표적-넷째 표적, 둘째 표적-다섯째 표적, 셋째 표적-여섯째 표적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다윗의 별)로 되어 있다. 첫째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인데, 넷째 표적은 오병이어 표적이다. 이 두 표적은 둘 다 자연과 관련된 표적들이다. 둘째 표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표적이고 다섯째 표적은 물위를 걸으신 표적이다. 언뜻 보기에 이 두 표적은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나 두 표적 모두 죽음이 경각에 달린 혼돈의 상황에서 구원을 얻는 표적을 말하고 있다(히브리적 사고에서 물 또는 바다는 혼돈과 죽음의 상징). 셋째 표적은 38년 된 병자 치유 표적이고, 여섯째 표적은 태생소경 치유표적이다. 이 두 표적은 모두 인간의 질병과 관련된 표적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표적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이다. 이는 나중에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인 예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적이라는 의미에서 ‘표적 중의 표적’이며, 앞의 여섯 표적과 구별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라는 예수의 말씀은 부활신학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사로의 소생사건을 요한복음 전체의 정가운데 장인 11장에 위치시켰다는 사실이다. 7일간의 창조순서와 일곱 표적의 구조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이 일곱 표적을 7일간의 창조구조와 상응하는 방식으로 배열한 것은 ‘다윗의 별’이 보여주듯 ‘유대교의 안식일’이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주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통해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대체와 승리를 변증하고자 하였다. 주일은 ‘주의 날’로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말한
다. 그러니까 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기독교의 출발이 되는 날이다.

 

3. 다음으로, 일곱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말씀’을 살펴보자. 요한은 예수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로고스’ 개념만이 아니라 “내가 왔다”라는 표현, 그리고 독특한 말씀기법인 소위 ‘에고 에이미’ 용법을 정형화(양식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에고 에이미’를 우리말로 옮기면 “나는…이다”가 된다. 불트만은 이 용법이 영지주의 자료가설에 근거한 헬라적 배경 아래 있다고 했으나 이 용법은 아래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철저히 구약적 배경에서 온 것이다.

이 용법은 출애굽기 3:14에 근거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אהיה אשׁר אהי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또는 제2이사야에서 많이 나오는 “내가 그다”(사 41:4; 43:10,13), “나는 야웨다”(사 43:11; 45:5,6,18), “나는 하나님이다”(사 43:12; 45:22; 46:9)에서 유래한다. ‘에고 에이미 말씀’에는 세 용법이 있는데, ‘절대적 용법’(“나는 나다”), ‘서술적 용법’(“나는 그다”), 그리고 ‘비유적 용법’(“나는...이다”)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에고 에이미의 일곱 비유적 용법’은 ‘성막(성전)의 일곱 주요 기구’와 상응한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48) - 떡상(출 25:23-30).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 등잔대(출 25:31-40; 37:17-24).
③ “나는 양의 문이다”(10:7,9) - 성막문(출 27:13-16).
④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 번제단(출 27:1-8).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 법궤(출 25:10-22).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 분향단(출 30:1-10).
⑦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 물두멍(출 30:17-21)

요한은 일곱 비유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대제사장 아론을 대신한 새 언약의 대제사장(히 9장)으로서, 유대교의 성전을 대체하신 분임을 천명한다. 동시에 그 중심에 번제단을 놓음으로써(요 10장) 자신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드림으로써 유대교의 성전제사제도를 대체하신 분임을 역설하고 있다. 나아가 요한은 전반부의 절정인 11장에서 예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예표하는 나사로의 소생사건을 둠으로써, 예수의 부활을 유대교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잣대로 삼고 있다.

우리는 <표적상징코드>와 <말씀상징코드>를 통해 요한복음이 헬라적 배경이 아닌 철저히 히브리적(구약적) 배경 아래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서 다룰 <지리상징코드>와 <절기상징코드>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요한복음이 헬라적 배경 아래 있다고 주장한 불트만의 주장이 얼마나 빗나갔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요한은 이러한 상징코드를 통해 당면한 현실, 즉 유대교와 로마제국으로부터 당하는 박해와 위기상황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및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기독교의 대체와 승리를 역설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