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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 이야기

조로아스터(Zoroaster)의 독일식 발음은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이다. 우리말로 배화교(拜火敎: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도 불리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를 기원전 약 600년경에 조로아스터가 종교의 창시자이다.

조로아스터는 원래 <낙타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철학자 니체는 정신적인 방황과 함께 <조로아스터교와 불교>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

그의 철학은 이러한 동양철학적 사고를 서양화한 것이다.

 

왜 니체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t)”고 말해야만 했는가? 
그것은 기성세대가 타락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양의 모든 기초는 종교의 바탕 위에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춰진 종교는 기성세대의 권위와 부조리로 가득했다.

당시 혁명과 철학(자연과학)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도구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이해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물질만능주의

프랑스의 혁명과 자연과학의 발전, 그리고 계몽주의를 통해 정신을 일깨우며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의 신학은 답보상태에 놓여 있었다. 

종교개혁으로 중세의 로마 카톨릭의 부당한 교리들을 깨뜨렸고, 혁명과 함께 농노제도가 무너지고 산업화, 급격한 도시화 속에 혼돈 그 자체였다.

산업화는 지리상 발견과 함께 신세계 정복의 야망을 이루어 주기에 충분했다.

지리상 발견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고,

이렇게 생산된 물건은 식민지에 팔려 나갔다. 

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노동력은 넘쳐났고, 인간성은 매몰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유럽 사회의 혁명과 변화  정치, 경제, 종교, 인간의 삶에 큰 영향  

1. 정치적 혁명

19세기의 혁명. 대표적으로 프랑스 혁명(1789-1799) 왕정에서 민주주의에로 변화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혁명은 유럽 전역에 <자유와 평등 사상>을 퍼뜨렸고, 여러 나라에서 <입헌주의와 공화주의 운동>을 촉발했습니다. 1848년에는 '유럽의 봄'이라고 불리는 혁명이 발생하여, 여러 국가에서 <민주적 개혁과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열강들의 식민지 전쟁은 유럽은 기회와 혼돈으로 몰아 넣었고, 1900년대에는 2번에 걸친 세계대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통한 공산 사회주의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2. 경제적 변화
  산업 혁명은 19세기 유럽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농업 중심의 경제에서 공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면서 대규모 생산과 도시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중산층이 성장하고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긴 노동 시간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되었습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와 가족 중심의 삶이 약화되었고, 이에 따라 종교적 신념과 실천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 공동체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과 과학적 사고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3. 종교적 변화
  19세기에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 두드러졌습니다. 진화론의 등장은 종교적 신념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특히,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기독교적 창조론과의 대립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와 함께 세속화가 진행되며,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복고풍의 종교 운동도 일어나, 종교적 신념을 재확립하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종교적 신념에 도전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 이론은 기독교적 창조론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사람들에게 종교적 신념을 의심하게 만들고, 세속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4. 인간과 사회
  사회적 변화는 인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 방식을 경험하게 되었고,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복지 제도와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현대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산업화로 인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종교 단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많은 종교 단체들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선 활동과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하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종교가 개인의 영적 삶보다 사회적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5. 종교적 운동의 부활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전통적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과 도덕적 해이 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일부 지역에서 종교적 운동의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복음주의 운동이나 사회복음 운동은 사회적 불평등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종교가 사회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종교의 새롭고 진보적인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결론

 19세기 유럽은 정치적 혁명, 경제적 변화, 종교적 갈등, 그리고 인간의 삶의 방식 변화가 얽혀 있는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현대 사회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

20세기 유럽 사회는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와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경제적 불황, 그리고 정치적 이념의 대립이 두드러졌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 포인트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혁명: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전쟁 후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이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경제적 불황: 1929년의 대공황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같은 대안적 이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정당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대립: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와 같은 파시스트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와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며, 유럽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을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며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는 서구 국가들과의 냉전으로 이어졌고, 유럽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사회 변화: 공산주의는 노동 계급과 농민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국가에서 정치적 억압과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

냉전의 종식과 공산주의의 쇠퇴: 1980년대 후반, 소련의 개혁과 동유럽에서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인간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피페해져 있는지, 진단할 방법이 없다. 

오직 참된 종교적 기준만이 인간의 상태를 해석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비와 이단들, 그리고 거짓 종교들이 사람들을 파괴시킨다.

성경을 이해한다면 세상에서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들 속에서도 기쁨이 넘쳐날 것이다. 

요셉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 거룩한 소소의 사람들은 시대를 밝히는 등불과 같았다. 

문예부흥이 아니면 우리를 돌아볼 방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문예 부흥은 성경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한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도 타락하고, 인간성도 타락하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니체는 당시 사회에 소망을 찾지 못했다.

그 시대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로 했다.  당시의 종교 기독교(카톨릭 포함)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니 내부에서 교리적 논쟁과 교파적 싸움만 하고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 어디선가 위로와 평안을 얻고자 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당시 부패한 종교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반은 동의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한복음 2장의 예수님이 성전에서 벌이신 소동사건을 보라.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메시지이다.

다 엎고 쫓아내야 한다. 

성전청결 사건이 아니다.

당시 성전은 예루살렘의 1/4(축구장 20개정도 크기)

헤롯이 지어주던 성전산(Herodian Temple Mount)의 크기는 남북으로 450m, 동서로 300m 가량 되었다.

성전뜰의 한 귀퉁이에서 벌이신 사건이다.

성전에는 성소가 있고, 제사장의 뜰, 남자의 뜰, 여자의 뜰, 이방인의 뜰로 나뉘어 있었다.

이방인의 뜰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고,

헤롯이 임명한 제사장들, 그들은 성직을 매관매직하며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누구도 그곳에서 시위를 벌일 사람은 없었다.

단,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낸 사람 선지자였다. 

그들은 네가 선지자적 행위를 벌이는데,

네가 만일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면  <표적>을 행하여서 보여주라고 했다. 

그것을 깨달았던 사람은 니고데모였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1)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성전에서 소란피움>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다.  성전을 올바로 세울 사람을 보내신다.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시위사건>이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 것을 성전 청결사건으로 해석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 설교를 듣지 말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라고 단언한다. 

왜? 틀린 설교이니까.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보신 예루살렘 성전은 성전이 아니었다.

인간이 쌓아 올린 돌들에 불과 했고,

거기서 드리는 예배는 죽은 예배요, 형식과 거짓 예배였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올려 놓은 것들을 참조 바람)

 

인간의 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니체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정신을 가진 초인의 탄생을 기대했다.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다.

니체는 1844년 태어났다.  그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는 1846년에 태어났고, 뒤를 이어 남동생인 루드비히 요셉이 1848년에 태어났다. 니체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남동생은 1850년에 죽었다. 니체는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보기 전이었다. 

그 후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니체 할머니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

두 하녀와 함께 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니체 할머니가 1856년에 세상을 떠나자, 가족은 그들 집으로 이사했다.

 그 때 유럽은 무너진 왕정을 복고하려는 힘과 이를 저지하려는 혁명세력이 대립했다.

당시 절대적이던 왕조(왕정)는 몰락했고 기독교는 쇠약해졌다.

시민의식은 일어났고 물질주의가 세상의 공백을 채워나갔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체제도 법도 정의도 바뀌었다.

화폐는 금융의 발달로 공간적, 시간적 자유를 얻었고 빠르게 부를 집적(集積)하게 되었다.

빈부의 점차로 격차가 커져갔다.

새시대가 왔지만 대다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다.

아이들이 법과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그 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몰락을 예언하며 '자본론(1870)'을 썼다.

부의 대부분을 소유한 소수의 부르조아와 가난한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간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시민혁명의 고귀한 희생 위에 지어 진,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니체가 염원했던 삶의 모습이었을까.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희망한다."
인간을 구원할 신은 없다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고 삶의 목적을 발결할까를 고민한다.

동생으로 인해 결혼도 실패하고 몸은 피페해진 니체는

동양종교와 철학에 관심을 둔다.

이미 동양철학은 자유와 희망을 초인에서 찾고, 또 유물론이 바탕인 불교에서는 <초인 ; 해탈한 인간>이 희망으로 여겨졌다.

그가 생각한 것은 <죽은 신>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어도 인간 스스로가 <초인>은 만들 수 있고,

비록 스스로가 초인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초인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상황과 조건도 바뀐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속도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도 빠르게 변한다.

물질적 조건이 바뀌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면 시대정신도 바뀐다.

 

어떻게 이 혼돈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 말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간이 가장 큰 희망의 싹을 틔워야 할 때인 것이다.

인간의 땅은 아직은 기름지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유럽에서 가졌던 신앙은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니체가 기대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 유럽 사회가 놓여있는 혼돈, 신앙이 그 답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주저 앉아 절망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대안을 찾으러 그는 동양종교에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동양사상을 서양의 옷을 입힌다. 

 

아래의 내용은 위키나무와 자료들을 가져와 정리한 것이다.

그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정신적 변형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변형 단계

  1. 낙타의 단계 : 모든 것에 (억지로) 순종 숭배하며 짐을 짊어진 단계.
  2. 사자의 단계 : 모든 것을 깨뜨리고 자유 독립 폐허를 외치며 인간의 굴레를 벗고자 하는 단계.
  3. (사자가) 어린이가 되는 단계 : 그를 얽매이던 모든 인간의 굴레를 벗어 버리는 단계로, 모든 가치가 전복되고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면 <초인(Ubermensch)>으로 탄생한다. 

니체에 의하면 ‘보통의 사람은 동물과 위버멘슈(초인)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인간, 고뇌, 굴레, 신, 초인 등등

 

 

차라투스트라는 30살에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산 속 동굴에서 10년간 고독을 즐기다가, 어느날 그는 자신의 넘쳐흐르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자 산을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하산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일종의 '즐거운'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을 내려와서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숲 속의 성자였다.

성자가 차라투스트라에게 왜 내려왔냐고 묻자,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을 믿고 있었던 성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거나 적선을 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이 선물인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자는 차라투스트라를 오해하고 있었다.

늙은 성자 :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아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닷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 :.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
성자 :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테지."
차라투스트라 :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성자 :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 :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성자 :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단지 자신의 넘쳐흐르는 풍요와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자신의 풍요와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선물은 동정이 되어선 안 된다.

사람들의 의지를 고양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에 대한 믿음'이 성자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는, 성자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이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것을 아직도 듣지 못했구나!"

성자와 헤어진 차라투스트라는 가까운 도시에 들어섰다.

그곳 시장에는 줄타기 곡예사의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들에게 자신의 넘쳐흐르는 지혜의 가르침 ㅡ 위버멘쉬에 대해서 말해보지만, 군중들은 줄타기 공연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도리어 되지 말라고 말한 '인간말종'이 되겠다고 아우성이다.

바로 그때, 줄타기 곡예사가 두 개의 탑에 걸쳐진 밧줄 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중간쯤 이르렀을 때 탑에서 작은 문이 열리더니 광대[4]가 나와 재빠른 걸음으로 앞에 있는 곡예사[5]를 뒤쫓았다. 그러고 광대는 "너는 지금 너보다 뛰어난 자의 앞을 가로막고 있잖아!"

이렇게 소리치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줄타기 곡예사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에 줄타기 곡예사는 그만 넋을 놓고 허둥대다가 밧줄을 헛딛고 곤두박질쳤다.

곡예사는 그렇게 죽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기꺼이 위험을 업으로 삼은 곡예사를 높게 평가하곤 그를 묻어주기로 결심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죽은 곡예사를 등에 메고서 길을 나섰다.

깜깜한 밤이었다.

도중에 광대의 경고를 받았으며, 도시의 성문에서 무덤파는 자들과 만나기도 하다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외딴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에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차라투스트라에게 빵과 포도주를 건냈다.

노인은 심지어 죽은 곡예사에게도 빵과 포도주를 먹으라고 말하고는 축객령을 내렸다.[6] 

그 후 차라투스트라는 길과 별빛에 의지해서 동이 틀 때까지 걸었다.

그는 늑대로부터 보호하고자 죽은 자를 속이 빈 나무 속에 넣고서는, 곧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깨어난 차라투스트라는 아침놀의 햇살을 받으며, 살아 있는 길동무[7]가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위버멘쉬의 가르침은 군중이 아니라 길동무에게 말했어야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다짐을 하면서 정오[8]에 이르자 하늘 위에 뱀을 목에 휘감은 독수리 한 마리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날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짐승들이다!"[9] 

차라투스트라는 문득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위험한 길임을 깨닫고는[10] 좀 더 영리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은 시작되었다.

 

[3] 차라투스트라는 선과 악의 투쟁을 모든 사물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바퀴로 본 최초의 인간이었다.

도덕을 힘, 원인, 목적 자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번역한 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업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이 근본적으로 이미 답이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인 도덕을 창조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오류를 인식하는 점에서도 최초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이 도덕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사상가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경험을 쌓았다.

역사 전체가 사실상 이른바 '도덕적 세계질서'라는 명제 대한 실험적인 반박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237~239)

[4] 교양 교육을 받은 엘리트. 도덕과 종교를 대표하는 자이다

[5] 교양 교육(도덕, 종교 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 하지만 마음이 유약해서, 자신보다 늦게 출발한 엘리트(광대)가 자신을 넘어서자 끝내 좌절하고는 죽고 만다

[6]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교적인 '이웃 사랑'을 상징하는데, 노인은 삶이 죽어버린 자에게도 이웃 사랑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일화는 동정에 기반한 그리스도교의 믿음 강요를 비판하고 있는 장면이다

.[7] 군중들은 타인이 정해놓은 길을 쫓아가기만 급급한 사람들을 말한다면, 길동무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8] 여기서 정오는 만물의 '그림자(거짓과 위선)'가 사라지는 시간을 말한다

[9] 독수리는 긍지를 의미하는데, 이제 '자기 자신'이 긍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10] 위험한 까닭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11] '자신의 선택에 의해 (옳고 그름이) 필연으로 바뀌게 된다'는 말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은 없으며 오직 주관적인 옳고 그름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 여기서 어릿광대는 사회가 원하는 가치, 즉 돈, 명예, 이성 등을 추구하며 안정된 생활을 꿈꾸는 엘리트를 말한다. 사회가 하라는대로 해서 물질적으로 성공한 엘리트를 말한다. 그렇다고 어릿광대가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니체는 (그리스 로마 전통을 추구하긴 하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13] 꿈에서 양치기로 나오는데, 뒤에 그 꿈의 양치기가 차라투스트라 본인임을 밝힌다

.[14] 정말이지 나는 모든 것을 다 좋다 하고 심지어는 이 세계를 최선이라고 하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나는 매사에 만족하는 자라고 부른다. 모든 것에서 맛을 느낄 줄 아는 매사에 대한 만족. 이런 것은 최선의 취향이 아니다! 나는 극도로 반항적이고 까탈스러운 혀와 위장을 존중한다. "나"와 "그렇다"와 "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씹고 소화한다는 것. 이것은 진짜로 돼지의 특성이다! 허구한 날 '이-아(옳다)' 하는 것. 이런 일은 나귀와 나귀 정신을 가진 자만이 배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397~398)[15] 나귀가 비극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짊어질 수도 팽개쳐버릴 수도 없는 짐에 눌려 몰락한다는 것... 철학자의 경우.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6)

[16] 언젠가는 그대들의 씨앗으로부터 나의 진정한 아들과 완전한 상속자가 자라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녕 요원하지만. 어쨌든 그대들 자신은 내 유산과 내 이름을 물려받을 자가 아니다. (중략) 더 높고, 더 강하고, 더 승리를 구가하고, 더 쾌활한 자들을, 신체와 영혼이 올곧은 자들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웃는 사자들은 반드시 출현하고야 말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554~555)

[17] 내 아이들이 첫봄을 맞이하여 서로 가까이 나란히 어우러져 함께 바람에 흔들이며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내 정원과 최고의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그리고 참으로! 저런 나무들이 나란히 어우러져 함께 바람에 흔들리며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내 정원과 최고의 통양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그리고 참으로! 저런 나무들이 나란히 어우러져 있는 곳, 바로 거기에 지복의 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는 그 나무들을 뽑아내어 따로따로 심을 것이다. 각각의 나무가 고독을 배우도록, 반항과 예지를 배우도록. 나무들은 각각 불굴의 삶의 살아 있는 등대로서, 울퉁불퉁 마디와 굽어 있는 모양새와 휘어지는 강건함으로 바닷가에 서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329~330)

[18] 내가 여전히 옳다는 증거로, 다른 불개에 대해 말할 테니 들어보라. 이 불개는 진짜로 대지의 심장으로부터 말을 하지. 그의 숨결은 황금의 입김과 황금의 비를 내뿜는다. 그의 심장이 그것을 원하지. 그러니 재와 연기 그리고 뜨거운 점액이 그에게 대체 뭐란 말인가! 이 불개로부터는 웃음이 오색찬란한 구름처럼 흩날린다. 이 불개는 너의 꾸르륵거림과 침뱉기와 내장의 격통을 혐오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27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원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만인을 위한, 그러나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Also spr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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