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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인간

철학의 시작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종교 역시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 -  

고대 히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의 본질과 원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려는 노력이 철학이다.

 

철학은 크게 형이상학(形而上學)/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나뉜다.
형이상학은 형체(形體)를 초월(超越)의 영역(領域)에 관한 이성적 탐구로 철학(哲學)을 일컫는 말이다. 

형이하학은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 주로 자연과학을 일컫는다. 

형이상학은 보이지 않는 원리나 사물의 실체를 직감이나 사유를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형이하학은 우리 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 사물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한 세상을 살아간다. 

이를 실존(實存 :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존’은 이 세상에 보내어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역사이래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실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해 왔다. 

즉,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삶과 죽음-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들 중에 종교(宗敎)와 철학(哲學)이 있다.

 

종교는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다루는 반면, 철학은 현세의 실존을 주로 다룬다. 

그러므로 종교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풀어가려 한다면 철학은 형이하학적 측면에서 이성과 추리로 실존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종교에도 역사이래로 수많은 종족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종류가 있다.

철학 역시 동서양의 고대사회로부터 지식의 축척과 함께 끊임없이 변천하는 당대의 시대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려 노력해 왔다.

 

유신론과 유물론

철학 내에서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有神論) 철학과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唯物論) 철학으로 나뉜다.

물론 신의 존재를 인간의 이성을 밝힐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신학적 명제나 사물의 본질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관점이다.

유신론 가운데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을 의존하여야 한다는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의 철학적 학문은 대부분이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주류를 이룬다.

 이는 진화론의 등장과 함께 세상의 학문으로 더 강력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니체의 영향을 받은 이후의 철학은 유물론적(唯物論的) 철학이 바탕이 되었다.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은 인간은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허무(불안)하고 부조리(不條理)함 속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 본다.

이러한 세계 속에 실존하는 존재로서 인간은《자신 스스로 : 의지》로 결단하고 분투하며 극복해 나가야 할 존재라고 말한다.

근세 유럽대륙에는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합리론, 임마누엘 칸트의 초월론적 관념론(이성적 추론)과 헤겔의 변증법(사실관찰과 논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철학 사조가 등장했다.

이 세 학문은 철저하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들이다. 

 칼 마르크스의 1848년 공산주의 사상이 등장하고, 

1859년 찰스 다아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었고,

그리고 1900년 니체의 실존에 관한 철학의 등장으로 기존 전통적인 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이 세 가지, '공산당선언, 진화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무신론과 유물론 바탕 위에 쓰여진 책들이다.  

 니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기존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배격하는 "하나님이 없다(신은 죽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니 무신론,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든 말든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양종교와 철학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유물론이 바탕이 된 불교철학은 니체에게 새로운 대안처럼 여겨졌다.

그의 사상은 인간 스스로가 신처럼 살기를 바라던 불교철학을 서양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허무주의에 빠지기가 쉽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자 가져온 개념이 <힘에의 의지, 초인, 영원회귀>이다.

 '힘에의 의지'란, 더 높은 것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

 초인(Übermensch)는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사람의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이의 세 단계로 분류한다.

  - 낙타는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너가게 해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인간을 말한다.

  - 그러나 사자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따라가기만 하는 것을 벗어나 반항하기 시작한다.

    사자는 종교와 도덕이 하라는 대로 살아라는 용(드래곤)의 강압에 맞써 부정하고 투쟁한다.

    하지만 반항만 할 줄 알 뿐이어서 그것에 고통과 허무만을 느끼지, 그것을 긍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 마침내 아이의 단계에 이르러서 사람은 삶을 놀이로 파악하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

    끊임없는 놀이를 통해 질리지 않고 긍정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여기서 아이의 단계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된다.

    이러한 사상은 데미안과 유사하다.  알려진 명대사로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신을 상징한다.  고대(AD 2세기) 그리스의 비술에 등장하는 주문. 단어 자체의 의미는 없다.  일곱 글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비학으로 글자를 모두 합산하면 365가 되기 때문에 영험한 힘이 있는 주문으로 신봉되었다. 각각의 글자는 일, 월, 수, 금, 화, 목, 토. 즉 태양과  및 당시 알려진 다섯 행성들[2]을 상징한다고 믿어졌다.

  니체나 데미안은 자신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과 현재적인 얽매고 있는 세계관, 틀, 등을 깨뜨리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을 부정하는 자들, 당시 기독교가 그들에게 신물나는 노예화 하는 종교라고 보고 극도로 혐오하며 반대하였다.

          자이나교(Jainism)는 인도 지역에서 발원한 인도 계통의 종교 

          - 명칭의 어원인 '지나'는 승리자라는 의미이며 '자이나'는 승리자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 영혼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종교다.

       그들이 찾은 유일한 답인 <위로>를 니체는 불교철학과 자이나교에서, 데미안은 고대 신비종교에서 찾았던 것이다. 

       자라투스트라(자라수슈트라, Zarathushtra) 또는 조로아스트레스(Ζωροάστρης페르시아어: زرتشت)

       조로아스터는 이란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예언자로서 그의 이름을 딴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체의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주인공 < 차라투스트라>가 10년 동안 머무르던 동굴에서 하산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는 내용으로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개하한다.  여러 등장인물과 사물, 시간과 공간에 상징이 담겨 있는 등 문학적 요소도 많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