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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위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가장 어려울 때, 힘들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같은 절망의 밤을 지날 때 어디서 위로를 얻고, 안위를 받습니까?
2018년 1월20일, 이 날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스트레스와 함께 독감으로 3~4일 약을 먹고 독감주사까지 맞았어도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머리는 깨질듯 아프고 어지러움증과 오한이 수시로 생겼습니다. 그러다 화장실에 간 기억은 있는데,
쓰러져 필름이 끊기고 3~4시간 후에 발견되어 119로 응급실로 가야했습니다.
토요일 오후시간 응급실은 초만원, 나에게는 인생에 가장 큰 위기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응급실로 가면서 혈압이 겨우 30이었습니다. 겨우 심장만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몸에 피가 돌지 못하는 상황, 검사결과 독감과 함께 급성패혈증과 요로감염까지 발병하여 응급조치를 마치면 중환자실로 가야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중환자이지요.
살아나도 신장이 망가져 혈액투석과 함께 평생 소변줄을 차야하고, 장기들이 손상되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담당레지턴트가 교수에게 수시로 전화하면서 혈압상승제를 투여해서 겨우 살려 냈습니다. 살리는 것이 우선이어서 혈압상승제를 투여한 후 혈압이 190으로 너무 높아 낮추는 약도 복용합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생긴 것은 사모가 모든 목사님과 가족,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그날 꿈을 꿨습니다. 비몽사몽중에...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안위해 주셨습니다.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일반병동에 6일 동안 집중치료 받고 어디 장기 하나 후유증없이 깨끗하게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퇴원 후에도 혈압조절 약을 복용하면서도 조금만 긴장하면 160, 180입니다.
다시 주님께 기도하면서 지금은 약을 벅용하지 않아도 140입니다.
주님은 나를 인위하시는 분입니다.
큰 모임과 목회자들 모임 등에서 간증할 축복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 이후로 권능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는 은사도 주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thou art with me; thy rod and thy staff they comfort me.”(KJV1769)
“גַּם כִּי־אֵלֵךְ בְּגֵיא צַלְמָוֶת לֹא־אִירָא רָע כִּי־אַתָּה עִמָּדִי שִׁבְטְךָ וּמִשְׁעַנְתֶּךָ הֵמָּה יְנַחֲמֻנִי׃”

시편23편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광야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우리의 경험 안에서 추측하여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푸른 초장이 펼쳐진 곳에 방목하는 대목장의 여기 저기 양들이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유유자적하며 풀을 뜯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면 베두인들이 양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양을 치는 모습을 보면 저 광야에서 어떻게 양들이 풀을 먹고 살까 싶습니다.
푸른 초장이 보이질 않습니다.
쉴만한 물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양을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때로 수십리를 가야합니다. 그러다 보면 산을 넘어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 맹수가 나타나 공격할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17:28-40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멀리서 보면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십미터나 되는 낭떨어지로 된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지면 걸어서 2~3 분도 되지 않는 거리같아 보이지만, 까마득히 낭떨어지인 골짜기를 건너려면 수백미터 혹은 수킬로까지 돌아서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 곳을 지날 때 원수가 추격해 온다면  도망할 곳이 없습니다.
평지인줄 알고 달려갔는데 눈 앞에 수십길의 낭떨어지가 앞에 놓여 있을 때 어디로도 도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것은 절망의 골짜기요 죽음이 기다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인생에 가장 어려운 고비, 절망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이런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고백한 것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풀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풀 한포기 보이지도 않던 곳이지만, 종종 비가 내리면 파릇파릇 풀들이 확 살아납니다. 푸른초장으로 바뀝니다.
쉴만한 물가 또한 우리나라 산골의 개울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광야에는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와 진흙으로 된 깊이를 알 수없는 물 웅덩이가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목자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는 무엇이겠습니까?  양을 치는 목자들에 가장 중요한 필수품은 《지팡이와 막대기》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팡이와 막대기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지팡이나 막대기가 아닙니다.
성경 여러 곳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오지만 시편23편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한 쌍으로 나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만드는 재료는 둘 다 같은 올리브(감람) 나무에서 취하여 만듭니다.
둘 다 같은 나무에서 취한 가지입니다.
줄기에서 취하느냐(지팡이),
뿌리에서 취하느냐(막대기)에 따라
<지팡이 혹은 막대기>라고 부르게 됩니다.
4절 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개역성경 : “지팡이와 막대기”
• 새번역 :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 공동번역 :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지팡이와 막대기의 순서를 뒤바꿔 놓음).
어느 것이 히브리어 원문에 가까울까요?

1. “쉐베뜨(שֵׁבֶט)와 “미쉬에넷(מִשְׁעֶנֶת)”
1) “쉐베뜨”목자의 (지팡이)로 사용
셰베트는 지파(각지파의 지도자)가 늘 가졌던 그 지팡이입니다.
• 레위기 27:32 “목자의 지팡이,”
• 미가 7:14 “주의 지팡이로… 양떼를 먹이시되”
• 이것의 이미지는 왕, 지도자의 상징(창49:10, 삿5:14, 사14:5, 겔19:11, 암1:5, 8).
• 때로 누군가(도둑, 들짐승)를 때리고 공격하는 용도(출21:20, 사28:27, 미4:14, 참고: 삼하18:14에서 요압이 압살롬을 공격한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있는 그 지팡이와 막대기는 나를 위태로운 자리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 주는 도구였습니다.

지팡이는 올리브 줄기에서 취한 가지로 한쪽이 주먹처럼 뭉둥합니다. 종종 양들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리기 위해 던져서 소리를 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때로 무기로 사용됩니다.

2) 또 하나의 <막대기: 지팡이> משענה-미쉬에나 이 단어는 동사가 "의지하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긴 막대기입니다. 때때로 물 웅덩이가 늪처럼 깊고 진흙이어서 빠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양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목자가 먼저 막대기로 땅을 찔러 깊이를 확인한 후 양들이 물을 먹어도 되는지 안전을 확보하고 먹도록 합니다.
이처럼 양들은 절대적으로 목자와 뗄 수 없습니다.
양은 목자의 도움과 돌봄이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양들에겐 안위(안전과 위로)의 도구입니다.

2. 지팡이와 막대기를 만드는 법
이스라엘에 가면 종려나무, 포도나무, 무화가 나무, 감람나무(중국어=키가 2~30m까지 자람)와 올리브(3~4m)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 성경에서 말하는 나무는 <올리브>나무입니다.
그 가운데 지팡이와 막대기는 <올리브> 나무에서 취하여 만듭니다.
올리브 나무 수명은 2천년도 넘습니다.
올리브의 특징은 몸통뿐만 아니라 뿌리에서도 매년마다 새순이 나옵니다. 그래서 위로 크지 못하고 고목처럼, 마치 절구통에 가지들이 뻗은 것처럼 자랍니다.
1)몸통인 줄기에서 난 새 가지를 '호테르'라 하고, 2)뿌리에서 난 새 가지를 '네쩨르'라고 부릅니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언급된 곳이 바로 이사야서 11장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호테르)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네쩨르)가 나서 결실한 것이요’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싹 = 호테르(지팡이)
감람나무 줄기에서 나온 가지(햇수가 오래된)로 만드는데 줄기 부분이 두툼하고 무거워 마치 곤봉과 같이 뭉뚱하고, 왕의 홀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집니다.
이를 멀리 던져 땅에 떨어면서 둔탁한 소리를 냅니다. 양의 우두머리가 그 소리를 듣고 움직이면서 양떼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줍니다.
목자는 보통 <호테르>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사자나 곰 같은 맹수가 양떼를 공격하려고 달려들면 호테르의 두툼한 쪽으로 맹수의 머리를 쳐서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삼상 17:40).
성경에서 말하는 '막대기'와 '지팡이'는 바로 올리브나무에서 취한 것입니다.

2. 가지 = 네쩨르(막대기)
막대기는 자, 척도(cannon, standard)로 번역되는데, 뿌리에서 나온
새순으로 만듭니다. 길게 만들어 막대기로 진흙이나 물의 깊이를 재는데 사용합니다.
물론 길게 만들어 구부려서 긴 지팡이처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감람나무를 다윗의 왕가(왕조)를 상징적으로 비유(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호테르)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네쩨르)가 나서 결실한 것이요’ (이사야 11:1)
이처럼 지팡이와 막대기 둘 다 같은 올리브 나무에서 취하지만, <호테르>짧고 뭉뚱하며,
<네체르>는 곧고 길어서 역시 막대기(지팡이)로 사용합니다.
네체르를 올리브 나무에서 취할 때에는 한 그루에 한 두개를 남기고 잘라줍니다.
남겨진 <네체르>로 사용될 가지가 길게 자라서 목자들의 지팡이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목자들은 <호테르 : 호신용, 방향지시, 맹수를 공격하는 무기>보다 긴 네체르(진흙과 물의 깊이, 곁길로 가는 양을 이끌 때 사용)를 지팡이처럼 써서 양떼를 인도했습니다. 양에게는 안위의 도구가 됩니다.

3. 목자이신 여호와
다윗은 양을 치던 목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목자였습니다. 그를 목자에서 왕으로 만드신 분리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선한 목자인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뿌리에서 나온 <네쩨르>는 새순에서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 왕조 즉 메시아 왕조를 상징한다.
쉐베뜨는 양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죽음의 위협이 있는 골짜기)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미쉬에넷(네쩨르)는 우리가 걸을 힘도 일어설 힘도 없을 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마태복음 2:23 “…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지명 ‘나사렛’은 히브리말로 ‘나쯔랏’입니다. 히브리말로 기독교인을 ‘노쯔리’( 나쯔랏 사람) 불리어 왔습니다.
누가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야할 때에, 아니 그 골짜기에서 안전하게 인도해 줄까요?
예수는 우리의 선한목자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십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우리를 살리려 아들을 보내셨고, 또 아버지의 그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한복음5:24-26)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광야를 지나야만 하는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어디서 안위를 얻고 있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