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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오늘날 정치인들은 선전선동에 매우 능하다.
무엇으로 그들의 거짓과 가면을 분별할까?
"선동, 1%의 마케팅과 위장, 99%의 거짓말"로
선동은 쉽지만 진실
은 어렵다
정치인, 방송, 언론, 작가들, 사업가 는 마케팅으로
'대중선동'에 능하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이에 대해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사야 5장 21절, 스스로 지혜롭다
(자기가 보기에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자기가 보기에 분별있는) 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다(화가 있을지어다)!
22 포도주쯤은 말로 마시고, 온갖 독한 술을 섞어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23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구나!

깨어있는 시민의 준말.

'깨시민'은 '깨어있는 시민'의 준말로 처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즉,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사후 추모의 의미로 썼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쓰일 때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로 쓰였다.
만일 깨어있는 시민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사회를 건강하게 세우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칭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르를  "라벨링(Labelling)" 했다.
그들은 그들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무서운 무기가 되어 사회를 무너뜨리게 된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작동하게 만든다.

굉장히 어렵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역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제23장에 예수께서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를 연속하여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다.
쉽게 번역하면 ' 이 벼락 맞을 자들아!'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구인가?
구약성경을 모두 외우거나 필사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그 시대에 걸어다니는 성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성경과 그들의 인격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토록 많이 성경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지식의 잣대>로 성경을 난도질하며,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비성경적인 삶을 살며 성경을 파괴하는 자들이었다.
"외식하는 자들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아"
외식하는 자는 '위선자'를 의미한다. 외식은 헬라어로 ὑποκριτής(휘포크리테스) 이다. 이는 헬라 시대에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자'를 의미했다. 그는 《가면을 쓰고 무대에서 역할극 연기를 하는 자》였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여 '겉으로는 온갖 의롭고 경건한 척' 하지만, 그 내면은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질타하신 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그들의 실체를 모르고 백성들은 지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추종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은 스르소 매우 대단하고 뛰어나며 탁월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인들을 너무나 쉽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 한다.
가스등 효과(gas燈 效果)라고 하는데, 그들의 지성으로 '뛰어난 설득'과 '선동질'을 잘한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들의 능력이라 믿고 타인으러 하여금 그들의 말과 주장을 믿게 만들어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들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들은 비판 능력을 상실하여 옳바른 판단력일 잃고 그들의 논리에 그저 끌려다니며 조종 당한다. 오늘날 정치 세계에도 이런 가스라이팅 당하는 일은 더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주장들로 계석해서 지배력을 행사한다.
다수의 국민들은 현혹당한하고 끌려 다닌다.

외식의 가면을 벗기다
예수님만이 그들의 실체를 아셨다. 이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면 결국엔 예수처럼 십자가에 죽어야만 한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를 비난한다. 그래서 '깨시민 코스프레'라고 말하면 보수가 진보를 비만한다고 말한다.

깨시민 & 행동하는 양심들은 우리시대의 바리새인인가 진정한 양심의 등불인가?
정치인들인은 그들에게 '깨시민'이라 불러 주는 '라벨링'을 한다. 그것에 국민들은 속는다.
또 그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말해줄 때, 그들을 인정해(낙인찍어 주는) 주는 정치인들을 무조건 따른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를 든 자들인가!
그러나 진정한 소수의 깨어있는 진정한 깨시민, 행동하는 양심은 무엇인 기준인가?
지성을 가진 저들의 말은 매우 고상하고, 매우 지성적이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논리와 지식을 가졌다.

나찌를 더 격렬하게 만들었던 요제프 괴벨스 선동 명언 중에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대중은 속아 넘어간다. 거짓말도 100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 거짓말도 매일하면 진실이 된다.
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폭풍이여, 떨쳐 나가라!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우리 시민들은 긍정으로도 보아야 하지만, 비판능력을 길러야 한다.

"
비판(批判, Kritik),", 같은 단어 다른 뜻
'비난'과 '비판'은 구분되어야 한다. 비판과 비난은 이란성 쌍둥이다. 비방'의 비(誹)는 헐뜯는다는 뜻이고, 방(膀) 역시 헐뜯는다는 의미다. 즉, 상대방의 언행의 잘잘못을 거론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고 비웃는 것을 말한다.
비판은 진실을 알아야 비판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비난(한자 非難) + 하다. 다른 사람의 흠이나 잘못을 들추어 사실보다 부풀려 나쁘게 말하는 것을 말한다.
비판(批判, Kritik),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검토하여 평가·판정하는 일을 말한다.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킹제임스성경조차 "비판하지 말라"를 "Do not judge", 혹은 "not judge" 정도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judge'는 법정에서 판결을 내릴 때 주로 쓰이는 단어이다.
마태복음 7장이 말하는 "비판하지 말라"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나쁜 말을 하거나, 공격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철학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특히 칸트철학에서 사용되는 '비판'은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철학자 칸트가 사용한 비판은 우리(인간)가 갖고 있고 또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이성'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말이다. 마치 이성이 만능인 것처럼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순수한(거짓없는) "이성"이 있을까요? 순수이성이 존재한다면 사물자체(Ding an sich)를 앒수 있다. 행동하고 실천할 때에도 도덕률/윤리를 마땅히 따라야 하지만 얼마나 많은 거짓과 불의가 난무하는가? 인간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건은 사기사건이다. 올바른 이성, 순수한 이성으로 실천한다면 그의 행동은 비판받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칸트가 사용한 '비판'은 결국 우리가 정말로 이성을 제대로(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엄격하게 《검토하고 따져 보겠다》는 의미이다.
언젠가 진은영 시인께서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그린비)라는 책을 썼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력을 길러라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수시로 켜놓고 작동시켜야 한가. 누군가 선동으로 우리를 끌어가려 한다. 이 시대의 좌파 목사들 중에 선동가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그도 한 때는 대형교회를 목회하던 사람이다. 마치 자신이 시대정신인 것처럼 유투브 설교로 선동한다.
비판을 끌어 올리는 방법은?
나의 이성이 잘못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되었다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고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또 다는 선동으로 덮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라. 그러면 그들의 행위가 보일 것입니다. 이사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