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아윈의 진화론은 과연 🤔 정설인가?
다아윈 이전에 있던 철학을 알면 진화론이 보인다.
고대의 철학자 진리에 이르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은 훗날 꽃을 피우게 되었을까?
문답법은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이끌어주는 방법의 하나이다. 소크라테스식 대화법(Socratic method) 또는 산파술이라고도 한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에는 두가지의 요소가 포함 되는 데 하나는 비판적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경청이다.
반어법은 변증의 방식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간에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이다. 변증법과 비슷한말은 대화법, 문답법이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물자체(사물의 본질)’ 는 알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밖으로 발현하는 현상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 했다.
예를 들면, 바람을 볼 수 없으나 바람(공기)의 흐름의 현상을 통해 공기를 아는 것과 같다. 사람의 두뇌을 끄집어 낸다고 두뇌에 담긴 지식을 끄집어 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가 이성의 인식 능력의 한계라고 선언한 물자체의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했던 것이 변증법이다.
이처럼 헤겔의 관념론은 칸트 철학에서 출발했다.
변증법은 모순을 극복해 발전한다고 보았다.
헤겔의 변증법은 본래 대화의 《논리》이다. 상대의 주장에서 모순을 발견해서 상대의 주장을 논파(논리적인 설명으로 상대의 주장을 깨뜨림)하는 방법이다. 수학에서는 이것을 귀류법이라 한다.
이처럼 《변증법》은 정반합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간다는 이론이다. ‘정(正)·반(反)·합(合)
《정반합 이론》은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론의 하나이며, 헤겔 논리학의 고유한 체계를 의미한다.
예를들어 밀알→잎과 줄기→(새) 밀알→잎과 줄기→(새) 밀알 ........
이러한 논리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 가는데,
이러한 정반합의 원리를 《역사》에 대입하여 탄생한 것이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유물변증법》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이 제시하는 5단계 발전단계론은 <역사의 본질적인 변화의 요소>를 《생산양식》이라고 보고, 원시공산 사회-> 노예제 사회->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신분석》의 철학자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 논리를 통해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쳬계화한다.
이제 변증법의 예를 살펴보자.
변증법이란 밀알이 썩어 줄기와 잎이 나고 다시 그 줄기와 잎이 시들면 수많은 밀이 열리는 이치와 같다. 처음의 밀알이 정(正)이라면 줄기와 잎은 반(反)이며, 다시 생겨난 밀은 합(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변증법은 모든 학문분야에서 사용하게 된다. 그 가운데 생물학에서 진화론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과학으로서 진화학이 다루어지게 되었다. 최초로 진화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라마르크였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로서 생물의 진화를 설명했다. 1858년 다윈과 월리스가 각자 독자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발견했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발표한다.
우리는 진화론이 설명하는 가운데 비약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조건, 가설이 있다.
《진화했다》는 가정하에서 설명한다.
헤겔의 철학을 가지고 각 학문분야마다 자신들의 이런을 설명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있었다.
생물학에서는 《이렇게 진화했을 것이다》는 가정, 또는 전제하에서만 설명된다.
신학에도 사용되었는데,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자로서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정,반,합의 논리로 무한히 반복해도 하나님은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 또한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은 정, 반, 합의 논리가 아니라 역설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로 》역설의 변증법》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이중의 역설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영원한 하나님은 그 본성과는 정반대의 존재, 즉 시간적인 존재로서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시간적인 인간은 첫 번째 역설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 본성과는 정 반대의 존재, 즉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과 영원의 교차, 즉 신-인의 오심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 설명 능력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파악된다. 따라서 시간과 영원의 교차는 헤겔식의 정반합의 운동이 아니라 절대적인 역설이다.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 한 인격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신-인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역설인 것이다. 또한 신-인의 역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역설일 뿐만 아니라,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 역설이기도 한다.
기억하라.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대화법(정반합)을 다른 학문에 적용하면서부터는, 반드시 《논리적 비약》이 전제가 된다. 이것이 없이는 헤겔의 변증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건, 가정하에서 비약을 통해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역사변증이 옳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