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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을 누려라

토마스 보스턴 목사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
싱클레어 퍼거슨, "완전한 그리스도"
현대신학의 매로우(정수, 핵심)는 구원의 확신인데, 하나님의 구원은 명백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영적 성장(아이들아! - 청년들아! - 아비들아! 자녀들아!, 유아와 어린이로 있는 동안에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어머니 대운 돌봄으로 인도하여 주어야 할 존재들)와  긴장이 있다. 구원의 확신읗 그리스도 안에서 누림에도 여전히 우리의 기질과 우리들 안에 있는 내재한 죄성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할 때, 걸림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구원의 확신》이다.
신자는 과연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율법은 그리스도인에게 불필요한가?
아니면 구원받은 신자들도 지켜야만 하는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라.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라.
그분을 경험하라.
그분이 당신에게 주신 것은 무엇인가?
교리적으로 문제가 아니라 신율법주의가 문제이다.
목회자의 마음 속에는 성도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되겠어! 똑바로 해야지" (율법주의)
"성도님, 너무 열심을 내지 마세요. 힘들게 되면 열정도 식을 때가 있어요"(율법폐기주의)
목회자가 갖는 태도(생각 속에서는) : 판단과 정죄를 한다. 그러한 생각들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렇게 연약한 자,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주님께로 인도해서 주님의 은혜를 감격하게 할 수 있을까?
연약한 신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때 대부분 목회자는 지식(가르치려는 태도 : 율법주의적 태도)으로 하려 한다.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신율법주의로 젖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과 빛으로 충만》하면 연약한 신자를 비판하거나 어떠할 것이라고 평가, 판단, 가정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