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저희들을 은혜의 자리에 불러주셔서 주님을 경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주의 진실하신 음성을 듣고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없어질 금이나 은 같은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모였사오니
주님이 여기에 와주지 아니하시면 예배의 영광은 없습니다.
오 사랑하시는 주님!
이 시간에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유일한 희망임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집중된 마음을 주시고, 무엇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단정한 정신을 주시옵소서.
특별히 귀가 어둡거나 지력이 부족할지라도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게 하시옵소서.
저희 모두에게 슬기로운 마음을 주셔서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하시옵소서.
저희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새해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익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로 주의 진리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전수받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인격적으로 승복하여 주시고,
또 그렇게 살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의 소원이 우리 속에 우러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153과 주님의 비전(요한복음 21:1~7)(요한복음21:1~7)
1.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마태복음 4:18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호숫가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실때 모든 것을 보려 두고 주님을 따라갔고, 주님은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갈릴리의 꿈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포도주 사건, 오병이어 기적,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들, 귀신을 내어 쫓고 치유하는 현장들, 전도하고 능력을 행하며 하늘의 역사를 경험했던 제자들,
그러나 주님이 돌아가시자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처럼 예루살렘에서 실망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3년이 지난 뒤, 지금 그들은 삶의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요 21장2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제자들은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복음 전할 꿈과 희망을 잃었고 절망하면서 그들의 삶의 원점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제자로 부름받을 때에는 주님과 함께 하였으나, 지금 그들의 삶에 주님이 없었습니다.
또한 한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거둔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 없는 삶은 헛될 뿐이라~
그러므로 뒤로 물러가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운은 주님 없는 삶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주님 없는 삶의 모습, 잡은 것이 없는 빈 그물은 아닙니까?
실패하고 낙심하던 제자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신앙 상태를 진단하고 점검하십시오.
2.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삶에 주님이 오실 때, 새로운 삶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요한은 1111 제자가 아니라 <7 제자>를7 언급한다(21:2)
2절,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베드로 다음으로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토마스)가 언급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베드로와 특히, 도마는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경험주의자, 철저한 인본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요 20: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믿음보다 이성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믿음과 신본주의> 신앙보다 <현실과 이성과 논리와 합리를 따지는 인본주의> 신앙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얘들아(파이디아)!”라고 부르셨을까요?
헬라어로 어린이(파이디온(παιδιον)인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14)
아이처럼 순종하는 모습, 믿음을 생각나게 함.
6절, "물을 배 <오른편>에 내리라”
- 오른편은 성경 전체의 사상으로 "권위와 권세, 하나님의 능력, 주님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경외심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9절,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안드라키아)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로 끌려갔을 때,
마 26:69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마태는 불 이야기조차 하지도 않고,
베드로의 맹세와 회개에 초점을 둔다.
눅눅22:56 “어떤 하녀가 불(안드라키아)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 불을 쬐던 가운데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다.
어찌할 바 모르던 베드로, 태연한 척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며 세 번 부인한다.
감옥에도 함께 가고 죽는데 까지도 주님과 함께 가겠다고 호언장담 하던 베드로, 그런데 그 순간 닭이 울고, 그 소리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베드로의 마음을 후비고 들어온다.
그는 견딜 수 없는 후회와 통한에 밖으로 뛰쳐나가 대성통곡을 한다. 《숯불》은 베드로에게 돌이키게 하는 사건, 곧 회개를 상징한다.
닭의 울음 소리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닭의 울음 소리와 함께 가야바 제사장 집의 뜰에서 《불을 쬐던 베드로》, 다시 그 불빛 사이로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달려 나갔던 것입니다.
3. 주님이 내 삶에 주가 오실 때, 내 삶에 일어날 새로운 기적을 기대하십니까?
당신은 주님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고 있습니까?
<153>은 주님의 비전이고, 오직 순종으로만 얻은 기적입니다.
히브리어로 “바요나 시몬”(요한 아들 시몬)을 히브리어 숫자로 다 더하면 그 합은 얼마일까?
숫자의 합이 153입니다.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여러 가지 수비학적인 설명도 옳지 않습니다.
그저 큰 물고기 153마리,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적이 어떻게 일오 났는가?
어떻게 이런 기적이 있게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번 주목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이 기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고 싶었을까요?
153마리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주님의 비전 : 사람 낚는 어부>을 보여주신 것이다.
밤새도록 인간의 경험으로 그물을 내렸어도 실패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은 그물 속으로 153마리 큰 물고기를 몰아넣어 주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방법도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 나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 상식, 내 방법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은 오직 주님의 명령에 순종이고, 주님이 사람을 몰아주십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혹시 한두 번은 되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실패가 없습니다.
물고기들을 그물에 153마리를 몰아넣어 주심같이, 사람을 붙여주시고 구원 얻는 기적도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겐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결단이 필요한가?
그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네가 이 사람들(=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이 사람들은 <이것들>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이것들》은 무엇인가?
네가 사랑한 삶의 현장인 바다 곧 너의 생계 수단인 배와 그물, 그리고 인생 경험과 동료들이다.
이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가?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실패와 좌절, 버려진 돌(베드로)처럼 쓸모없던 돌(베드로)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다시 머릿돌로 쓰십니다.
실패한 제자들과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쓰십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 쓰실 수 있다.
시편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신명기 28장12절~13절,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 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보고(보물창고)를 열어주시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늘 문은 하나님이 여십니다.
그러나 축복받는 일도 다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새해 2024년도 한 해는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여 <하늘의 축복이 열리는 기적>을 맛보는 성도가 되십시오.
금보다 더 귀하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큰 물결이 뛰놀아도 주를 더 찬양하는가
큰 환난이 닥쳐와도 주를 더 찬양하는가
깊은 잠에 빠진 영혼 주님 만날 수 없어
근심 걱정 많은 자는 찬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찬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언제 다시 주 오실지 아는 이가 있는가
신랑으로 오실 주님 맞을 준비되었는가
기름 없는 등불 들면 주님 만날 수 없어
재림 나팔 소리 나면 예비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맞을 준비함이 금보다도 귀하다
우리는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