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 아들의 영광과 우리의 실존(요한복음11:1~16)
예수 그리스도 영광과 우리의 실존(요한복음11:1~16)
들어가는 말
요한 사도는 그의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 마지막 일곱 번째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을 증언함으로써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천명(闡明)합니다. (*추가로 부활 후 21장 153마리의 기적)
이 표적이 그동안 행하신 표적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 38년된 병자를 고침,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임, 바다 위를 걸으시고, 나면서 소경되었던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까? 요2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
1.나사로의 죽음과 우리의 실존
헬라식 이름인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히브리식으로는 엘리에셀(אֱלִיעֶזֶר, 도우시는 하나님/ 창15:2)이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인간 실존의 표상(表象)이다.
즉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보여준다.
첫째,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불청객이다.
둘째,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끝, 종착역이며 그것을 숙명(운명)처럼 여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급작스런 죽음 앞에서, 가장 슬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던 이(배우자나 자식)를 잃는 것.
예수님이 아끼고 사랑했던 나사로가 죽은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커다란 충격 그 자체였다.
셋째, 믿음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무슨 소망이 갖게 하는가?
-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죄렌 키에르케고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소망이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래서 믿는 자들은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루면서도 다시 만날 하늘의 소망과 위로를 노래한다.
2.나사로는 죽음과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아들의 영광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를 친구(friend)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당장 죽을병도 능히 고치실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권능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류하셨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심을 통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과 또 아들에게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즈음 나사로는 죽었다. 그리고 그 날 장례가 치러졌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는 나사로가 장례되어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요11:17).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다. 속으로 원망스럽기도 했다. 베다니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와락 쏟아졌다).
심령에 통분히 여기사(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끓어오름).
민망히 여기사(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느끼시는 슬픔의 감정).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은 패배와 절망이 아니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보여 주신다.
죽은 나사로를 잠자는 자를 불러 깨우듯 무덤에서 불러내신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아오라.”
마치 아담을 흙으로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넣으시고 생령되게 하실 때처럼.
여호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호흡을 하던 아담에게, "아담아! 일어나거라" 하셨을 것 같다.
3. 육신적 사랑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
우리들은 당장 내 눈앞에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해결해 주셔야만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고 믿는다.
포도주가 없을 때 포도주로 채워주는 도움도 큰 기쁨이고 놀라운 사랑의 행위이다.
질병이 고침 받고 건강해 지는 것, 고통스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 배불리 먹여주심도 기쁨이고 사랑의 표현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은 육신을 위한 것이며 그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표적(기적, 이적)은 잠시이고,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이처럼 육신적인 사랑은 한계가 있고 유한하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다르다.
사랑을 받은 마리아(12장1~12), 그리스도의 사랑(13:1)을 묵상해 보라.
이것이 차원이 다른 사랑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은 영원한 기쁨이고,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 되지는 형언할 수 없는 영혼의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요7:38~39, 14:27).
■ 말씀나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1:2)
1.예수님은 나의 고통 문제를 당장 개입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심은 하나님의 영광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13:1)과 기쁨(7:38~39,14:27)은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 나누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