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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자가 되는 길, 진정으로 예수를 알아가는 단계들

친구네 2025. 3. 22. 23:18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할 때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하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나사렛 예수님을 만났고, 제자가 되었고, 그의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있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하시겠습니까?
  사도는 "예수를 소개하면서 왜 하나님이셨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셔야 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복음서를 기록했다.  
사도 요한도 먼저 인간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
그의 제자가 되어 그가 말씀하시는 것과 행하시는 일들을 보면서 예수에 대해 점차로 알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 나사렛 예수 곧 랍비 - 율법선생으로,
그러나 그가 행하시는 표적(*이적, 기적)을 통해 특별한 선지자로,
그리고 보이지 안으시는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계시자로,
그리고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불가사의한) 부활로 자신 또한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신다.
 
이와 같이 점차로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메시아) 그리스도로,
그리고 마침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난다. 
우리들 대부분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고 믿음을 고백하게 되며, 예수를 사랑하고 경배하는 참신자로 성장해 간다.
본문의 맹인되었던 사람은 네 단계로 알아가며 성장해 갔다. 
참된 신자가 되는 단계의 마지막 절정은 예수를 구주로 경배하는 것이요,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인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아는 것이다.
 

1. 예수라 하는 그 사람(요9:11)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태어나 평생을 맹인으로 살다가  눈을 뜨고 새사람이 되는 감격을 경험했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고, 사람들이 네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단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라고 대답하듯, 우리도 예수를 아는 첫단계에서 그러했다. 사람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를 알게 되는 단계이다.
 

2. 선지자(요9:17)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두 번째 단계는 그가 나의 눈을 뜨게 한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선지자로 알게 되었다. 모세, 엘리야, 엘리사처럼 선지자이다. 예수님도 위대한 치유의 표적 행위를 한 것으로 보아 선지자 중 한 분처럼 인식되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요9:33)

세 번째 단계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누구로 인식하고 있었습니까?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랍비)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맹인도 자신의 경험으로 창세로부터 눈을 뜨게 했던 선지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매우 특별한 분이다. 요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4.  '인자'(요9:35-38)

네 번째는 인자(人子, 그 사람의 아들)이다.
요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경배자로 나아오게 하심

예수님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다.
왜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도 있는데 자신을 인자라고 소개하셨을까?
도대체 "인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태복음은 '인자'를 (124회), 마가복음(70회), 누가복음(109회), 그러나 요한복음(17회)로 는 매우 적게 나온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요한복음에서는 대부분이 <모형론>으로 사용된다.


요1:51 야곱의 사다리(육적 이스라엘의 머리인 조상 야곱과 새백성의 머리인 예수님 자신을 비교)
요3:14 광야의 놋뱀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치유)
요4:5~6 야곱의 우물 ,야곱보다 큼(12절)/  믿음의 족장 야곱은 이스라엘의 머리임, 그보다 크심
요5:45 모세(고발자)
요6장 광야의 먹었던 하늘 양식 만나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 생명을 주는 만나
요8:56 아브라함보다 이전부터 존재, 아브라함이 예수가 오실 날을 보며 기뻐함(아브라함과 비교)
요한복음은 전체에서 예수는 사람으로 오시기전 "선재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계시자, 영광(죽음과 부활)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친히 드러내심, 생명을 주시는 분"(참조 계1:13, 14:13)

 
누가 최종 심판자인가?
예수를 죄인으로 선언하던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들이 맹인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심판하신다.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절하다(G4352: προσκυνέω 프로스퀴네오)
-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G4314: ~에, ~을 향하여)퀴네오(입 맞추다)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a) 프로스퀴네오는 '입 맞추다'를 의미한다(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
접두사는 헬라 역사 이전 시대에 행해진 제의 의식과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의 조각들에는 예배하는 자들이 신에게(프로스) 입맞춤을 위해 손을 쭉 뻗고 있다.

(b) 헬라인들 사이에서는 이 동사가 신들을 경배하는데 사용되던 전문용어로서, '땅에 엎드리다, 부복하다, 무릎을 꿇고 경배하다'를 의미한다. 아마도 땅(즉, 지신)이나 신상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바닥이 엎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를 가진 것 같다.

(c) 후에 프로스퀴네오는 통치자를 신격화하는 것과 로마 황제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d) 프로스퀴네오는 예배에서의 꿇어 엎드리는 외적인 행위 이외에도 경외심과 겸손을 나타내는 내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70인역본에서 2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샤하의 힛파엘형(절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람 앞에서 절하는 경우나 또는 예배에 다 같이 사용된 말이다(창 18:2; 창 19:1; 창 22:5; 창 23:7, 창 23:12; 출 4:31; 레 26:1; 민 22:31; 신 4:19; 수 23:7, 수 23:16; 삿 2:12, 삿 2:17, 삿 2:19; 룻 2:10 등). 그리고 프로스퀴네오는 세기드(신하의 예를 다하다, ~에 경의를 표하다, 단 2:46; 단 3:5이하, 단 3:10이하, 단 3:14, 단 3:18, 단 3:28), 주아(부들부들 떨다, 전율하다, 단 6:27), 카라(무릎을 꿇다, 에 3:2; 에 3:5), 나샤크(입 맞추다, 왕상 19:18), 아바드(섬기다, 시 97:7)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신약성경에서 6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오로지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마 18:26에서조차 왕은 하나님의 상징적 표상)에게 드리는(혹은 드려야만 하는) 예배만을 전적으로 의미하는 것 외에는 구약성경의 의미가 채택되어 보다 발전되었다.
행 10: 25이하; 계 19:10; 계 22:8이하에서는 예배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드리는 것이지, 사도나 천사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 앞에 절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왕이시며(마 2:2), 주이시며(마 8:12),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마 14:33), 전지전능하신 분(보기: 마 14:33; 막 5:6; 막 15:19)이시라는 사상을 명백하게 혹은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절한다는 것은 종종 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연결된다.

한편, 절하는 것은 강하게 요청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도와주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 구속자에 대한 믿음,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에 찬 믿음의 표시이다(예: 마 8:2; 마 9: 18; 마 15:25).

요 9:38에서 절하는 것은 신앙이 외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난 행동과 다름없다. 즉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분을 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에게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배하는 것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 특히 합당한 것이다(마 28:9, 마 28:17; 눅 24:52).

사단이 만물의 참된 질서를 뒤집어 놓으려고 예수님에게 절하라고 요구했을 때, 사단은 바로 이러한 행위로써 자기 자신이 하나님 한 분에게만 합당한 권위를 빼앗으려 했으며(마 4:10; 눅 4:8),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명령을 모두 팽개쳐 버린 하나님의 대적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b) 절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본성의 표시이다. 그의 예배(절)는 그의 신이 누구인지, 곧 진정한 하나님인지 혹 우상이나 귀신인지, 아니면 사단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참조: 계 9:20; 계 13:4, 계 13:8, 계 13:12). 왜냐하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주로 예배,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에로의 부름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라!" 즉 이것은 전능하시고 영광되신 그분을 창조자이며 심판자로 받아들이고 그 유일하신 주권을 인정하며 너를 주장한다는 것이다(계 14:7).

(c) 프로스퀴네오는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곳에서 '공중예배에 참여하다, 기도들을 드리다'(예: 요 12:20; 행 8:27; 행 24:11)를 의미한다. 이로부터 유래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프로스퀴네오가 특수한 종류의 기도, 주로 경배하는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것의 특징적인 용례는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경배 찬송의 표현에 나타나 있다(계 4:8-11; 계 5:8-10, 계 5:12-14; 계 7:10-12; 계 11:15-18; 계 12:10이하; 계 15:3이하; 계 16:5-7; 계 19:1-7). 이는 하나님(혹은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며,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존재(즉 감사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물에 관련된 것이 아님)와 그 역사하심(참조: 계 4:8-11; 통치, 계 15:3이하; 계 16:5-7; 구속, 계 5:8-10; 종말, 계 11:15-18)에 관련되는 것이다. 찬송은 다양한 언어와 사상들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존엄함을 찬양할 새로운 표제들을 끊임없이 찾아내며 그의 이름에 합당한 말들을 찾아 최고로 찬양 받으실 공로와 속성(영원하심, 전능, 경의, 지혜, 거룩, 능력 등)을 주님께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찬송은 자주 더할 나위 없는 찬사의 형태를 취한다: "~이 합당하오니"(계 4:11; 계 5:9; 계 5:12), "구원하심"(계 7:10). 여기에는 감탄하는 기도들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할렐루야", "아멘" 계 7:12; 계 19:1, 계 19:3, 계 19:4). 이러한 모든 찬송들에는 범우주적인 선율이 화려하게 흐르는데, 이와 같은 경배 앞에서는 인간의 기원과 감사가 침묵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참조: 마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