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만일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았다면,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이라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놀라운 역사에 충분히 감동과 기쁨, 놀라움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 어떤 분으로, 또 내 안에는 어떤 믿음이 생겨났을까요?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 (요한복음6:22~72)
두 개의 표적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를 걸으심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그가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인간의 존재 곧 실존 실존(existence)에 대한 철학적 정의는 존재자(entity)가 실재(reality)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 존재(being)의 존재론적 속성을 말한다.
신이 없는 인간의 실존은 <살아가야할 현실의 삶 앞에서는 <빵/떡을 먹는 문제에 대한 걱정, 염려>와 <죽음 앞에 허무 : 두려움, 불안>에 샇여 있다.
인간의 실존에 <삶 : 빵> 문제와 <죽음 :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십니까?
여러분 자신을 들여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이 주인이 되어 빵과 두려움의 실존 속에 계속해서 살아 가시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인가?
주여~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 알게 하시고 믿음을 갖게 하소서.
만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떡과 두려움과 불안, 염려와 걱정을 해결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여 우리로 믿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바로 <표적>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놀라운 행적으로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사건 그리고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물 위로 걷는다든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사건 등을 이적, 기적, 기사라고 하고 이것들은 메시아적 증거로서 표적이라고 한다.
① '이적'(異蹟)
-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거나 초이성적인 비상한 사건(일)을 가리킴.
② '표적'(表蹟, sign)
-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 외부로 나타난 현상을 말한다. '표징'과 동의어로 쓰인다. 표적은 이적을 실현하는 자의 신분과 그 이적이 뜻하는 바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막16:20; 행14:3).
③ '기사'(奇事, wonder)
- 기이하고 경이로운 일 또는 장래 일에 대한 징조나 암시를 가리킨다(시106:22; 단6:27; 마24:24).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의 입장에서 나타낸 표현으로, 주로 그 사건의 신비성에 강조점을 둔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을 주실 분이이며,
생명의 떡을 어떻게 주실 수 있는지를 무엇으로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므로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성(머리)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은 우리의 이성이나 머리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믿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은 초월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믿음으로만 이해되는 영역>입니다.
무리들과 12제자 외에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절),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61절)고 물으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67절).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떠나시겠습니까?
1. 오병이어 표적: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
먹는 문제(빵)의 시험에 실패한 인류의 조상 아담,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생명의 양식)으로 살 것이라"(마 4:4). 인간은 육적 양식(빵) 그 이상의 영의 양식을 필요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여 주심같이, 하나님은 그의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보내 주셨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요6:35), 나의 참된 양식입니다. 무리들은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시고 홀로 산으로 떠나가셨다. 무리들은 그들이 바라던 육신적인 기대와 소망이 실망으로 바뀌며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그들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어두운 밤 <두려움>과 <불안>은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2. 바다 위를 걸으신 표적 :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재촉하여 가버나움으로 보내실 때 배를 타고 힘써 노를 저으며 바다 위를 가던 제자들, 그러나 수리를 가던 도중 큰 바람을 만나 고생하며 사경까지(적어도 7시간) 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바다와 같다. 큰 바람과 풍랑은 우리 앞에 있는 혼돈과 두려움을 상징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실존 곧 두려움,불안,걱정,염려를 가장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다를 걸어오심을 통해 예수님 자신이 자연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요 피조세계 위에 계신 분임을 나타낸다(욥9:8,시77:19).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그분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한다. 주님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요6:20) 이는 출3:14,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라는 말씀과 동일한 표현이다. 예수님은 <여호와>이신 하나님이시다. 제자들 앞에 있는 그분은 사람의 형상(인자)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다.
3. 표적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과 이를 본 자들의 믿음의 문제
무리들은 표적을 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실망하며 예수님을 떠나간다(요6:66).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베드로처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머리/이성>로 이해할 수는 없어도, <믿을>때 이해하게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결론.
오병이어는 실존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 바다 위를 걸으신 표적은 우리의 실존
적 두려움(불안)을 다스려 주시는 분이 주님!!!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 말씀나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1:2)
1.우리의 실존 – 빵(떡)/ 먹는 문제와 인생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함께 나누어 보자.
2.주님께서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를 걸어오심을 보여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믿음은 어디에 기초하는가?
■ 오늘 새롭게 깨달은 말씀 혹은 신앙의 결단, 기도제목을 작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