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천지창조와 그 아름다움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날짜별로, 그 종류대로 지음 받고 창조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된 피조물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그가 바라던 대로 창조된 것에 만족함을 표현하셨다.
'하나님이 보시에게 좋았더라'
좋음(좋았더라)
"좋았더라"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매우 흡족하여 만족하시고 행복감이 벅차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시다.
萬福(만복)은 '모든 복'을 일컫는다.
'복'은 히브리어 '토브(טוֹב)'이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음'이 히브리어 '토브(טוֹב)'이다.
'토브'는 '좋다(good), 아름답다(beautiful), 훌륭하다(excellent)'는 뜻이다.
이 좋음이 어디서 나왔는가?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유익)이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이요, 떠나면 화(禍)가 된다. 창조주이시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없는 삶이 화(禍)이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복(福)이 찾아온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을 일관되게 말한다.
화복(禍福)이란 자기 스스로가 불러들이는 불행과 행복을 말한다. 화(禍)와 복(福) 짓는 일은 오직 자기 자신이 불러들이는 것이니 만큼 누구를 탓할 일이 못된다. 오로지 자기 책임이다.
불행인 화(禍)
그토록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왜 인생에게 불행이 찾아오고 화를 입게 되었을까?
욥기 2장 8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 그(욥)가 이르되 그대(아내)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말하는 '복'은 히브리어 '토브(טוֹב)'이고 '화'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라아(רַע)'이다.
'토브'와 '라아'
'토브'는 '좋다(good), 아름답다(beautiful), 훌륭하다(excellent)'는 뜻이다.
그런데, 욥의 아내는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이
9 절하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말했을까?
“¶ Then said his wife unto him, Dost thou still retain thine integrity? curse God, and die.” (욥 2:9, KJV1769)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וַתֹּאמֶר לֹו אִשְׁתֹּו עֹדְךָ מַחֲזִיק בְּתֻמָּתֶךָ בָּרֵךְ אֱלֹהִים וָמֻת׃” (욥 2:9, BHSSBL)
여기에서 ‘욕하다’라는 말은 원어에는 ‘바라크(בּרך)’가 사용되었다.
‘바라크’는 본래 ‘축복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욥의 아내는 고통스러워하는 욥에게 "하나님을 축복하고 죽으라." 했을까?
"아니, 그래. 이렇게 망하고, 몸도 망가지고 저주를 받고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이 입구녕에서 나와! "네(욥)가 제정신이여!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하나님이 ‘찬미하다’ 죽어라."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은 여기서 ‘바라크’가 강조형으로 쓰였는데, 이는 완곡어법의 하나로 쓰였다.
완곡어법은 일종의 돌려 까기이다. 직접적으로 말하기에 너무 부정적일 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경을 범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로 바꿔 번역했다.
예컨대, 흔한 미국인들이 심한 욕설인 ‘fuck’을 말하지 않기 위해 ‘F-word’라고 부르는 경우를 완곡어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열왕기상 21장 10절, 13절에 아합이 나봇에 대한 거짓 증언을 꾸밀 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도록 시키는데, 이때 ‘바라크’의 강조형을 사용했다.
욥의 아내가 볼 때 자신들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고, 남편마저 욕창으로 저주가 임한 모습에도 남편인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를 찬송하는 것이 어이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망연자실한 욥의 아내는 하나님 대한 굳건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욥의 아내의 말은 "그래,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죽어라’는 의미가 된다.
저는 욥의 아내의 말이 인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막 나간 정신없는 말이었다.
이 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성구는 다윗이 쓴 시편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개역한글)
“The fool hath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They are corrupt, they have done abominable works,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시 14:1, KJV1769)
“לַמְנַצֵּחַ לְדָוִד אָמַר נָבָל בְּלִבֹּו אֵין אֱלֹהִים הִשְׁחִיתוּ הִתְעִיבוּ עֲלִילָה אֵין עֹשֵׂה־טֹוב׃”
1. 어리석은 자
그 마음(레브, 심중, 심장)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어리석은, 무감각한, 분별없는(H5036: נָבָל, 나발)
나발(H5034)에서 유래, '어리석은, 무감각한, 분별없는'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8회 나온다.
(a) 잠언에서는 나발의 의미로 케실(H3684: 바보, 어리석은 자)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어리석은 자인 아들은 아비에게 결코 기쁨을 주지 않을 것이다"(잠 17:21).
"미련한 자는 절대로 품위 있는 말을 할 수 없다"(잠 17:7)
"어리석은 것을 말하고 마음이 악에로 향하여 있는 어리석은 자를 더 이상 존귀하다 아니할 것이다"(사 32:5-6).
(b) 나발이 한 민족에게 사용될 때
하나님을 모르거나 경외하지 않는 백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의롭고 정당한 처사에 사악함으로 보답하므로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다(신 32:6).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어리석은 백성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들은 온종일 하나님을 모욕하며 떠들어 댄다(시 74:18, 시 74:22, 신 32:21).
(c) 나발이 개인에게 사용될 때
무신론자나 불신앙인, 즉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를 가리킨다.(시 14:1, 시 53:1). 또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를 조롱한다. 따라서 다윗은 어리석은 자가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서 하나님의 종을 모욕하지 않도록 그의 죄과에서 건져 주시기를 기도했다(시 39:8).
욥의 아내는 어리석은 여인에 비유된다(욥 2:10).
어리석은 자의 자식들이란 어리석은 자에게 배운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 자식들은 비천하고 이름없는 자들이며,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다(욥 30:8).
(d) 나발(한글개역 "괴악한 자")이 된다(삼하 13:13).
그러한 사람은 오만하고 거만하게 된다(잠 30:22). 무례함, 즉 이성에 호소하거나 하나님을 청종하기를 (즉각) 거절하는 태도는 나발에게서 볼 수 있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나발>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는 <벨리알의 자식> 같아서 아무도 그에게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삼상 25:17).
2.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행실)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어리석음이요, 저주이며 화를 자초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어리석고 미련하며 화를 자초하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모든 선의 기준(基準)이 되신다.
① 하나님이 선(善)이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
②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선(善)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딤전 4:4).
③ 하나님의 은사들은 선(善)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④ 하나님의 말씀은 선(善)이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즉,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옳다’ 또는 ‘착하다’를 의미하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을 선하다고 말한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 13:21).
1) 하나님은 선악을 알고 계신다
(창 2:9,17,3:5,22;잠 15:3)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잠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2)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하신 분이다(약 1:13).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