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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신다

친구네 2024. 11. 11. 21:41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걱정합니다.
"제발 기독교인답게 살아 주세요." 
기독교인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세 가지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1.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머리로 믿는 신앙, 혹시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그런 신앙,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 이름을 부를 때 기쁨이 있습니까?
  
그 기쁨이 없다면, 평안이 없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3.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있습니까?
   '지옥생활에서 천국생활로'는 머린 캐로더스 목사가 쓴 그의 가정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마귀는 떠나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며 가족들을 어둠 속에 폭력과 폭언 속에 살게 만듭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가 되어 기적같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고통이라는 보따리를 이고 광야길을 걸어 광야 순례길입니다. 때로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질 때 거기에는 놀라운 일들, 예기치 못한 행복이 생겨납니다. 지옥 같던 삶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루이스(C. S. Lewis)는 언제인가 말하기를 “사탄의 가장 영원한 속임수는 세상 사람에게 그가 없는 것으로 확신시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시탄은 온갖 불행의 생산자요, 행복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천국의 기쁨을 원한다면 사탄이 놓은 죄의 덫과 혼돈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그의 최대 목표입니다. 그는 감정과 충동을 적절히 활용하여 넘어지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엔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 불평과 감사가 공존합니다.
   우리 마음이 섭섭할 때, 감사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영성>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믿음>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믿음을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믿지만 100%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믿는 것이니 그 믿음이 내 공로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100%은혜입니다.

 
믿음의 시작과 완성이신 그리스도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전에 어떤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그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떤 놀라운 사실, 즉 복음(기쁜 소식)을 듣고 내가 그것에 붙들리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 그러한 놀라운 일을 당신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사작, 내 안에 생겨난 믿음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호칭입니다.
○○○ 대통령.
○○○은 이름이고, 대통령은 직함, 호칭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 : 기름부음받은 자>인데, 히브리어의 메시아(מָשִׁיחַ 마쉬하)를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일컫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우리를 구원할 자로 보냄을 받은 메시아입니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이지요.
그런데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종교의 <창시자의 가르침>이면 충분합니다. 그걸 배우고 본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 존재, 그분과 뗄 수 없습니까? 다른 종교는 그의 인격도 중요하지만, 그와 연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종교의 창시자가 없어도 경전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곧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생명과 연합해야 때문입이다.
예수의 인격 속으로 들어가 날마다 그와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인격적이라는 말은 실재적인 만남, 체험을 말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인격적 연합의 종교입니다. 예수와 뗄 수 없습니다.
예수없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접붙임과 같이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믿음의 시작, 그 믿음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로마서 10장에서 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들으려면 먼저는 누군가 이 소식을 알려 주는 <전달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전도자'라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그리스도와 동거하고, 동행하고, 동역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제자입니다.
사도요한은 그가 쓴 요한 1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사도는 혼자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 누리라고 말합니다. 여러 증인들 곧 제자들이 함께 목격했던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의 증인들입니다. 보았고, 만져보았고, 알았고, 경험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꾸며낸 서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 곧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했으니까요.
 그들은 예수를 알았고, 믿었고, 전했습니다.
 "예수가 메시아(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러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가?
그는 무슨 일을 위해 오셨는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무엇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먼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도 하나님이라는 얘기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사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에서 
 1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우리가 예수를 알면 그가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세상에 오신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가 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이 되신 하나님
그가 사람으로 오셔서 서른세 살 가장 좋은 때, 황금기에 죽으셨습니다.
사람이기에 죽을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든지 인간이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병들었거나 늙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가 죽을죄를 지어서 그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이유(사두개인 제사장, 장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로 죽였고,
정치적인 이유(본디오 빌라도)로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가 죽음으로 끝났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음이나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와 능력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을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사망애서 부활)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세주라는 증거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도 없으시고,
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도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1,6)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 사도는 예수를 믿음의 도리, 사도,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믿는 도리는 호몰로기아(도리)를 번역하였는데,
도리(道理)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①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
② 어떤 일을 해 나갈 방도(方道)를 말한다. 
  예수는 우리가 마땅히 구주로 고백하고 믿어야 할 분이라는 의미이다. 
왜 우리가 그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어야 하는가? 그의 부활 때문이다. 
만일 그가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메시아(그리스도, 구세주)도 될 수 없다. 말 그대로 그냥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는 부활하셨고, 그는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우리 믿음의 시작, 창시자라는 말입니다. 

승천하심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생명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의 육체로 새롭고 산 길,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인 사도는 유대-그리스도인들 신앙공동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끔 선인들 중에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를 믿던 제자들 그들의 순교는 특별합니다. 
그리스도가 약속한 장래에 있을 일을 믿지 못한다면 그러한 죽음을 다 같이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또 그분과 영으로 연합되는 기쁨이 있었기에 죽음도 그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도의 말대로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면 그는 하늘의 권세를 사용하시고 휘두르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가 하늘에 계시다는 증거, 즉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 곧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는 복을 주십니다.
어둠에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빛을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비추셔서  
믿어지는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의 내용
지금부터 진술하는 내용들이 믿어집니다.
1)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이 사람으로 보내심 : 예수 그리스도
2) 이 땅에 우리를 구속(구원)하시려고 성육신(도성인신 : 하나님이시며 사람으로)하셨고,
3) 자신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심으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생축과 같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해 드리셨습니다.
그의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시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 다 이루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의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죽음에 매여 종노릇 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그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2: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러면 우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날 위해 죽으셔야 할 만큼 죄인입니까?
그 죗값 때문에 죽은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 구원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들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았는데 그것이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원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따랐습니다.
그런 줄 몰랐다고 죄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처럼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것이 죄이고 본질상 진노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었습니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세상에 나는 지옥 가야 할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사람들은 그 심판이 없어야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이 말 또한 마귀가 넣어준 생각입니다.
양심은 말합니다. 인과응보, 죄를 지은 것만큼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양심은 압니다. 영원히 살 길이 있다면,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이것을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길 기뻐하셨습니다.

멸망, 심판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셔서 아들을 보내사 그가 일러주는 구원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음, 연합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왜 믿음이 필요한가?


믿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 연합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듯,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내 것이 되게 하려면 <증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증서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손과 발의 못자국, 옆구리에 창자국 곧 하나님의 아들이 날 위해 죽음, 그 사건이 증서이지요.
그런데 그 값을 치르신 효과가 내 것이 되려면, 그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죄용서와 구원)를 내가 수납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수납하는 손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날 위해 하신 일을 믿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약속, 그리스도가 약속대로 하신 이루신 그 일, 십자가에 날 대신하여 죽으심, 또다시 살아나심(부활), 승천하심, 다시 오신다 약속하심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믿어집니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했고, 만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건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믿음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누군가 이 구원 얻는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사야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그 기쁜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복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발입니까!
그 소식을 전해줄 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우리가 일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누가 일왕이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누가 일왕 히로히토가 맥아더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조선인 중에는 한 사람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라디오 방송을 듣고 믿었고 기뻐했습니다.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우리에게 밝혀줍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15)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로마서 10:14-15)
  그러므로 소식을 듣고 알게 되었고, 들음을 통해 믿게 되었습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이제 할 일은 내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 바울의 논증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으십니까?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방송입니다. 
비록 육성은 아니어도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압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여러분 계급장 떼고, 직급 떼고 여러분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습니까? 
그냥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그리고 이름을 부르면 당장 달려와 줄 그런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부모님일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만일 여러분의 인생에 절망, 낭떠러지 앞에, 막다른 골목에, 최대의 위기에 놓여 있다면

지금 당장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무슨 절차나 방법을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분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당신을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계시고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