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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되고 허탄한 말

친구네 2024. 10. 5. 23:23

사람에게는 짐승과 달리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가 있다.

글이라는 글자, 문자를 통해, 통신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고 받는 소통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대면을 소통하는 것이 훨씬 많다.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상대방의 의도나 숨을 뜻도 읽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들(딤전 1:9; 4:7; 6:20; 딤후 2:16)과 히브리서(12:16)에만 쓰인 특별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βέβηλος (베베로스)이다. 이 단어가 그레코로만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특별히 주후 1세기 말부터 기독교가 지중해 연안으로 크게 확장되면서, 당시의 문화적 종교적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는 목회서신들과 일반서신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에서 보이는 암시적 대적자들은 소위 ‘영지주의자들’(Gnostics)이라 할 수 있다. 목회서신들의 저자는 영지주의자의 거짓 가르침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그들의 가르침을 "망령되고 헛된 말"(βέβηλος κενοφωνία, 베베로스 케노포니아, 딤전 6:20)이라고 하는데, ‘말’이라고 번역된 κενοφωνία(케노포니아)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빈말’(empty talk)이다. 이 목회서신이 암시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여러 설명이 있지만, 2세기 중엽에 이단으로 정죄 받았던 Marcion은 구약의 하나님과 율법을 부정하며 신구약에서 대조되는 것을 담은 그의 저서 [Antithesis, 반론]의 제목이 딤전 6:20에서 말하는 "거짓된 지식을 담은 반론"(안티데시스ἀντίθεσις)을 의미할 수 있다.

저자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무소스μῦθος, myth)를 버리라"(딤전 4:7) 고 말하며, 단어 βέβηλος(베베로스)를 사용한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의 신화같은 세계관을 저자는 부정한다. 딤후 2:16에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는 권면에서도 βέβηλος κενοφωνία(베베로스 케노포니아)가 또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이 목회서신들이 반박하고 거부하는 것은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이다. 그것을 망령된 신화, 망령된 빈말이라고 저자들은 비판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 딤전 1:4이 말하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구원의 거짓된 지식으로 사용하는 영지주의자들의 망령된 말일 것이다.

βέβηλος(베베로스)는 원래 일반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inaccessible) 신성한 장소나 종교적 비밀스러운 계시에 다가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성한 것을 속되게 하였거나 혹은 금기시된 것, 거룩한 것을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도록 세속화했다는 것이다. βέβηλος(베베로스)의 동사 βεβηλόω(베베로오)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도 일하고 있으니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는 말씀에서 거룩한 안식일을 속되게 한다는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였다(마 12:5). βεβηλόω(베베로오)는 헬라어 구약성경(LXX)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다(겔 13:19),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다(레 18:21; 19:12),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다(겔 23:39),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다(렘 16:18)의 뜻으로 쓰인 히브리어 חלל의 헬라어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어원적으로 일반인들이 신성한 장소나 계시에 접근하게 된 세속화를 의미하면서, βέβηλος(베베로스)가 ‘걷다’의 뜻을 가진 βαίνω(바이노)와 ‘문지방’(threshold)의 뜻을 가진 βῆλος(벨로스)의 합성어로 보면, 문지방을 벗어나 일반적인 속된 장소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속적이고(profane) 비종교적(irreligious)인 것을 말하면서, 은유적으로는 비도덕적이고 불경건한(ungodly) 부정적 모습을 나타낸다. 영지주의자들의 건강하지 못한 교훈(딤전 1:10)이 디모데 전서의 저자 눈에는, 불법, 불순종, 불경건, 비거룩, 세속화, 반인륜적인 범죄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딤전 1:9에서 법, 순종, 경건, 거룩의 뜻을 가진 단어 앞에 부정 접두어 ἀ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비밀스러운 구원의 지식(디모데 전서 저자의 눈에는 ‘거짓 지식’)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inaccessible) 것이라고 주장하고, 오직 밀교적 의식(initiation)에 참여한 소수에게만 허락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회서신은 그것이 당시의 문화적 세속화라고 생각하며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세상의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점점 잠식되어 세속언어들인 성공, 출세, 부흥, 확장, 리더십 등으로 포장되어 ‘하나님의 문지방’을 넘어섰다. 문화적 수용과 타협이 도를 지나쳐서 거룩하고 영적인 문지방을 넘어서게 될 때에, 결국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경계는 무너지고, 다시 혼돈과 흑암이 가득 한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차별하지 않고 우리는 구별되어야 한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한 그릇 팥죽을 얻고자 특별하고 고귀한 장자의 권리를 포기한 ‘망령된 에서’가 되지 않아야 한다(히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