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 대부흥과 기도
영국 웨일즈 지방의 부흥
웨일즈 부흥을 일군 인물은 이십대 에반 로버츠였다. 에반 존 로버츠(Evan John Roberts)는 웨일스의 선지자이자 1904~1905년 웨일스 부흥의 선두 인물이었다.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경과 주일학교와 가정 예배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는 11살 때 그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 탄광에서 20대 초반까지 일하였다. 로버츠는 어린 나이부터 영적인 일들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었다. 그는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성경을 읽었다. 성경 외에도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해 토머스 찰스의 ‘기독교 지침’,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 찬송집’, 존 번연의 ‘천로역정’, 하지의 ‘신학개요’와 그 시대의 중요한 신학 서적들을 읽었다.
13세에 회심한 후 그는 교회 일원이 되었는데 그 후 한 번도 교회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교사로도 봉사하였으며, 자신이 재정을 마련하여 교회 울타리를 세웠다. 지역교회에 대한 그의 헌신은 철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부흥과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위하여 11년 넘게 기도하고 있었다. 1891년 13세 소년으로 에반 로버츠는 두 가지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첫째, 그를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실 것. 둘째, 웨일즈에 부흥을 보내주실 것이 바로 기도제목이었다. 로버츠는 하늘에서 주어지는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다. 그는 부흥을 위하여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였다.
1904 부흥 전 당시 영적 상황
1904-5년 부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웨일즈 땅에 여러 번 부흥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마지막 부흥이었던 1859년 부흥 이후 웨일즈의 영적인 상황은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하였다. 성경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력 그리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책 출판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과학적 지식에서 모든 인생의 답을 찾을 려고 하였다. 종교적 무관심과 무신론과 불신앙이 팽배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생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하였고 성경의 권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의 주요 교리는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세상에서의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철학이 교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적 쇠퇴의 결과는 곧 바로 주일 예배 및 교제, 기도회에 참석 수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영적인 상태는 정말 지극히 저하 되었으며 나라 구석구석에 온갖 죄가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 가운데 다시 한 번 웨일즈 땅에 부흥과 성령의 역사들을 일으키셨다.
로버츠의 웨일즈에 대한 비전 - “10만 명의 영혼을 주옵소서”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대해 눈떴다. 25세 나이에 목사 후보생으로 헌신하여 뉴캐슬 엠린에 있는 문법학교에 들어갔다. 1904년 9월 로버츠는 조셉 젠키스와 시켄스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블라이내너흐 교회로 갔다. 이곳에 도착한 로버츠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성령을 주려 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전 집회에서 ‘오 주님, 나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나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하면서 소리쳐 울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넘쳐났다. 로버츠는 큰 권능과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 체험 후 로버츠는 웨일즈를 복음화하려는 열정으로 불타 올랐다. 그는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온통 부흥을 위한 갈망에만 쏟았다.
로버츠의 마음에는 웨일즈 전체를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는 인식으로 가득 찼다. 그는 “10만 명의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비전을 가졌다. 그리고 늘 이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로버츠가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력하게 임하셨다. 그는 시대적인 환상을 보고 성령을 강하게 체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로버츠 안에 역사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는 계속 새벽 1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하나님과 기도 가운데 교제 하며 부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영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규 훈련과정을 포기하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하였고, 개인 성경공부와 기도, 찬양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에반 로버츠의 메시지 핵심과 부흥
웨일즈 부흥을 위해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였던 에반 로버츠를 통하여 웨일즈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로버츠는 부흥의 불길을 퍼뜨리면서 어디에나 가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로버츠의 설교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 믿음, 회개, 용서, 정직, 영적 체험의 요소, 하나님의 무한성과 위대하심, 최후심판 등이었다. 로버츠가 인도한 공적인 부흥 전도사역은 1904년 10월 31일 월요일 모리아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첫 집회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모두 17명이 모여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을 준비를 할 것을 권면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한 로버츠의 메시지 핵심은 다음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1)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으라. (2) 삶에서 모든 경건치 못하고 불의한 습관들을 버리라. (3)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여라. (4)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개적으로 고백하라. 이것들은 약속된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그날 모임은 새벽 3시까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모리아 교회에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어 부흥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로버츠의 첫 집회 후 30일 만에 3만 7천명이 주께 나아가 회개하였다.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모임들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뜨거운 찬양과 기도모임들이 전국적으로 불붙기 시작하였다. 1905년 말까지 교회는 쉬지 않고 날마다 기도회를 계속했었으며 기도회 참석 인원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집회는 아침 열 시에 시작하여 밤 열두 시까지 계속되었다. 매일 3회씩 예배를 드렸다. 에반 로버츠가 인간 도구였는데 설교는 별로 하지 않았다. 찬송, 기도, 간증이 집회의 주요 성격이었다. 동원이나 광고도 없었다. 찬송가도 없었다. 성가대도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 같은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갈망하는 마음을 풀어주시고 전 세계에 미칠 만큼 놀라운 부흥을 부어 주셨다.
26세였을 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일 설교후 남아 있는 17명의 성도들에게 전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령이 그들 위에 임했다.
"첫째로, 부흥을 사모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이웃을 해롭게 한 것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생활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불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께 온건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넷째로,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증거하여야 합니다."
웨일즈 부흥의 특징은 기도였다.
강력한 설교자들에 의하여 주도된 18세기의 부흥과는 달리 찬송과 기도가 집회의 중요한 순서를 이루었다. 이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광경이 목격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교회에 가입하는 회중의 수의 폭발적인 증가였다.
웨일즈 부흥으로 인해 복음에 대하여 매우 냉담했던 그 지방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이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있었던 부흥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영국 사람들 사이에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웨일즈 지방은 영국 서남 지역에 있는 산악 지대이다.
그 곳의 산업은 대체로 석탄과 금광이었다 . 척박한 신앙의 풍토를 개탄하는 그 곳 목회자들이 웨일즈의 부흥을 위하여 여러 해 동안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러한 기도의 결실은 1903년 8월경에 열린 수련회에서 젊은 사역자들이 큰 은혜를 받음으로써 1904년의 역사적인 부흥의 전초를 놓게 된다. 그 이듬 해에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는데, 여기서 은혜를 받은 회중들이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형제들의 잘못 을 용서하며, 이웃에게 입힌 손해를 정직하게 배상하였다- 참된 부흥의 현상이 나타나는 모든 곳에서 대개 그러하지만 이러한 영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동반한 회개는 1907년의 평양 대부홍의 경우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집회에서는 죄의 위험과 순종하는 믿음 생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이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씩 자기 죄를 고백하고 기도에 힘썼다. 목회자들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가고, 청년들의 뜨거운 개인 전도가 행해진 것도 바로 이때 일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W. Reynolds . 신학지남(1935), pp.9-10를 참고할 것.
17) 명신홍 부흥론, 신학지남 통권 30권 32호(1963년 6월). pp.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