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을 방해하는 장애물들(8)
8. 태만
사랑과 확신의 관계를 강하게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누리는 확신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수단들을 주셨다.
그런데 이런 의식, 소위 ‘은혜의 수단’을 오용하거나 무시하면 확신이 흔들릴 수 있다.
시편 42-43편에 나오는 영혼은 무엇보다도 예배와 사역, 교제의 삶에서 벗어나 낙심과 혼란에 빠졌다.
히브리서는 온전한 확신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면서 예배와 교제를 무시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시편과 찬송가, 찬양을 부르며 사랑과 선한 일을 위해 서로를 권면한다.
그 모든 것은 신성한 의례(儀禮)로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확신을 증진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런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방해를 받고 확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세례와 성찬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씀에서 얻는 것과 똑같은 것을 성례에서 얻지만,
그것을 더 온전히 얻을 수 있다.
성례를 통해 믿음이 강해지고 우리 영혼의 반경이 넓어졌기에 이제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전에는 그리스도를 약하게 경험했지만 이제는 직접 손으로 만지듯 온전히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 자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성례는 꼭 필요하다.
9. 검은 구름이 우리를 뒤덮을 때
“하나님이 얼굴 빛을 숨기시어 심지어 그분을 경외하는 자라할지라도 흑암 중에 행하거나 빛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을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8:4)
신약에서는 이런 확신의 부재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그런 흔적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교회는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에 관한 이사야 51장 10절을 통해 구원의 현실이 구원의 확신으로 이어질 때까지 믿음이 자라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다.
단, 다시 말하지만 확신에 심리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심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하나님 얼굴빛이 숨겨진 느낌이 오래 지속되고 아무런 위로도 없을 때는
우리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육신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육체적 이유가 없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져 확신이 약해질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육체적 상태 때문에 우리의 영이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신 약속이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4:8)
의심하는 영혼은 이 말씀 안에서 쉴 수 있다.
이상 9가지의 장애물을 살폈다.
끝으로,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도 “구원의 확신”이 율법폐기주의와 방종이 아닌 은혜로운 열매를 낳는다고 말한다.
“성령 안에서 그 마음이 화평과 기쁨으로 또한 하나님에 대한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능력 안에서 즐거움으로 순종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3)
신약의 교회에는 바로 이런 기쁨의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전도의 담대함, 기도의 열심과 친밀함, 시련과 위험과 반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예배의 기쁨을 낳았다.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이것을 낳는 확신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확신은 방종이나 율법폐기주의가 아닌 ‘진정한 겸손’을 낳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자기 확신과 자신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확신,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양자의 영이요 은혜의 인이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유산인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슴 깊이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확신이 우리 시대에 너무도 절실하다!